천상병이라는 풍경 / 김훈
천상병의 마음이나 체취의 조각들에 관하여 말해야 하는 것은 지극한 고통이다. 그의 표정이나 목소리, 그의 어법, 그의 걸음걸이, 그의 웃음, 그의 음색, 그의 밥 먹는 모습, 그의 조는 모습, 그의 집, 그의 음악, 그의 신발, 그의 옷, 그의 얼굴, 그의 눈곱, 그의 입가의 침버캐, 그의 주머니 속의 천 원짜리 두 장, 그의 선글라스에 관하여 말하는 것은 그의 시에 관하여 말하는 것보다 훨씬 고통스럽다. 무구한 것들은 인간의 말에 의하여 훼손되거나 엉터리로 규정되지 않는 지복(至福)을 누릴 권리가 잇을 터인데, 천상병의 웃음소리와 그의 입가의 침버캐와 그의 주머니 속의 천 원짜리 두 장이 그러하다. 그것들이 모두 합쳐져서 이루어지는 천상병은 ‘백치 같은’이라고나 말해야 할 무구함과, 이 세상을 향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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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0. 20.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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