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은 내 운명 / 허해순
오후 세 시는 나에게 있어 박자를 갖지 않는 매끄러운 시간이다. 차 한 잔과 자두 두 개 정도로 충전하며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삶을 어루만져 본다. 아버지가 장어 대가리에 대못을 치고 껍질을 벗기던 날선 칼 동작이나 단수수 마디 내리치던 울 할머니 식칼 든 모습을 떠올린다. 가리사니가 없던 내 성장기에 유독 까탈지게 굴던 내 미각 때문에 한여름에 애물단지 노릇해도 지혜롭게 먹여주신 그 정성을 생각한다. 식은 밥이라고 굶고 잤다가 아버지에게 혼쭐이 났지만 식도락가인 아버지를 닮았으니 도마에서 칼질하는 소리만 요란해질 수밖에, 그러나 그 덕에 어렸을 때부터 길들여진 그 맛을 지금도 온몸의 내 세포가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는 육회비빔밥을 좋아해서 강철로 만든 식칼을 숫돌에 물을 뿌려가며 갈아 두곤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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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3. 3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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