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과 맑은 날 / 맹난자
쾌청하게 맑은 날은 맑아서 좋고, 우울하게 흐린 날은 흐려서 좋다. 비 오는 날, 비에 갇혀 하릴없이 흐려진 창 앞에 우두커니 서면 안개비와도 같은 음악의 선율이 내 마음속에서 피어오른다. 대체로 이런 날은 첼로의 음반을 걸게 된다. 막스 브르흐도 좋고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도 좋다. 첼로의 G선은 때로 사람을 영적(靈的)으로 만들고 심신을 편안한 이완의 상태에 머물게 한다. 따라서 맥박도 느려지고 호흡도 진정되어 깊은 선율 속으로 침잠하게 된다. 마치 지하 동굴의 계단을 따라 깊숙이 내려가면 거기 어느 신(神)적인 존재와 만나게 될 것도 같다. 비는 곧잘 사람을 회고적(懷古的)으로 만든다. 비밀 서랍 속에서 동경(銅鏡)을 꺼내 들고 본래의 자기 모습을 점검하는 엄숙한 제의(祭儀) 같기도 한순간이다...
수필 읽기
2022. 7. 14. 08:35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