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금상 장아찌를 담글 때마다 늘 아쉬운 게 누름돌이다. 마땅한 누름돌이 없어서다. 누금돌이란, 장아찌를 담글 때, 항아리 속 재료가 뜨지 못하게 맨 위에 얹어서 지그시 눌러주는 묵직한 돌덩이를 말한다. 대개, 채석장에서 깬 듯, 날 서고 반듯한 돌덩이 보다는 세월의 물살에 닳고 닳아 둥그스름하고 묵직하고 반들반들한, 그런 돌덩이를 누름돌로 쓴다. 양파나 깻잎 등, 해마다 장아찌를 한두 번 담는 것도 아닌데 나는 매번 장아찌 담글 때서야 누름돌을 챙기곤 한다. 생각해보니, 내가 평생토록 살림고수가 못 되는 이유가 바로 그런 부분이었지 싶다. 여름철에 오이지 담글 때는 반드시 누름돌로 눌러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남쪽 출신이라서 서울내기들처럼 오이지를 즐겨 담지 않는다. 서울사람들은..
제6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필 동상 바다로 향한 귀는 늘 젖어 있다. 날마다 촉수를 세운 채 물결의 변화를 재빨리 감지하고자 자꾸만 바다 쪽으로 귀를 늘어뜨린 탓이다. 고기잡이가 주업인 사람들의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자연이 부리는 요술이다. 아무리 철저히 단속하고 준비해도 일 년에 한두 번은 혼쭐이 나곤 한다. 그래서 흐리면 흐려서 걱정, 안개가 끼면 사위를 분별할 수 없어 걱정, 물빛이 지나치게 맑아도 걱정이다. 그런 걱정이 모여서 도대불이 생겼다. 도대불은 제주 어부의 길잡이 불빛이었다. 제주지역에서 칠십 년대 초반까지 솔칵이나 생선 기름, 석유 등을 이용하여 불을 밝히는 민간 등대다. 지형이 높은 곳에 주변의 돌로 해안의 특성에 맞게 원뿔형, 원통형, 상자형, 표주박형 모양으로 담을 쌓아 등명..
제6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특별상 이웃집 할머니가 다녀가셨다. 여간해서는 남에게 싫은 소릴 하시지 않는 분인데 단단히 벼르고 오신 모양이었다. 갑작스런 일이라 우리도 적잖이 놀랐다. 시골살이를 하러 오기 전부터 이웃과 잘 지내고 싶어 마음 준비를 많이 했었다. 이사 와서는 집집이 떡도 나누고 음식을 만들어 경로당에도 가져다 드렸다. 어르신을 뵈면 살갑게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도 인사성 바르다고 좋아들 하셨다. 그런데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때문에 이웃의 핀잔을 받게 되었다. 청송으로 귀농을 결정하고 암수 강아지 한 쌍을 분양받았다. 오래 사귀던 친구와 이별할 아이들을 위한 배려였다. 청이와 송이로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중 송이는 잘 생긴 수컷이다. 송이가 어느새 자라 어엿한 총각이 되었다..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가작 하늘이 너무 예쁘다. 구름 꽃이 피어있다. 드라이브라도 가야겠다. 코로나19 종식 때까진 사회와 생활 속 거리두기 실천이다. 인적이 드문 곳을 생각하다보니 사찰이 떠올랐다. 산속에 있으니 공기도 좋겠다, 초록의 푸새도 실컷 볼 수 있겠다, 9살 딸아이와 나섰다. 의성에 있는 고운사로 목적지를 정했다. 지난해, 가을 문학기행으로 다녀온 곳이다. 문학기행 복습도 할 겸 자연 속을 아이와 걷고 싶다. 고운사 입구까지 무성한 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아이는 초록 터널을 지나며‘와아’감탄의 소리를 지른다. 주차장엔 차가 없다. 아주 조용하고 평화롭다. 일주문과 천왕문 사이의 흙길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아이를 천왕문에 서게 하고, 나는 일주문에 서서 셀카봉을 길게 뽑아 사진 속..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가작 뱃사람들의 술추렴은 닻을 내리자마자 이어진다. 오촌 아제도 고등어 한 손 들고 돼지국밥집에 앉았다. 주인 아지매 인심 한번 후하다. 해삼 두 토막 덤으로 내주며 긴 의자를 닦아준다. 아제는 오늘도 순정(純情) 맡기고 막걸리 두 병 외상 긋는다. 선창에 앉아 그물코를 꿰매던 아버지도 술을 마셨다. 아버지의 노래는 한이 서린 듯했고, 뜻도 모르는 가사는 눈물이 나게 했다. 항구는 청춘을 저당 잡힌 어부들의 전당포였다. 어류 작황이 예전만 못하다며 곳곳이 생인손 앓는 소리가 들린다. 바다 속에서 사라진 게 어디 한두 가지랴. 선원마저 열에 여덟은 외국인이다. 그들은 이미 우리나라 바다에 익숙한 듯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낸다. 안면 튼 사람들과 혀 짧은 우리말로 곧잘 인사도 나눈다...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가작 벗어놓은 허물들이 전혀 허물이 되지 않는 장마당 한켠, 갈매 하늘 같은 다듬돌이 묵언 수행하듯 앉아있다. 늙은 할배의 좌판에는 시간의 저쪽에서 모여든 잡다한 물건들이 환생이라도 하려는 듯 눈을 반짝인다. 벼룩시장의 가판대에서 청석의 다듬돌을 만나면서 우물 같은 상념이 두런거리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나는 열 두어 살의 계집애 신이 내렸는지 갑자기 혀가 짧아진다. “옴마야 할배야 이 다듬돌 얼마야?” 어느새 유년의 기와집에 선다. ‘고뿔도 안 걸릴 년 서방 잡아 처먹고도 입맛도 안 다신 년. 방망이질 소리가 접점을 찍는다. 할매는 씩씩거리며 휘모리장단으로 다듬이질을 몰아가고 그 장단이 버거운 엄마는 슬그머니 방망이를 밀어놓고 일어선다. 분명하게 할매는 엄마를 향한 욕은 아..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가작 “언니 담배 꽃 본적 있어요? 너무 예뻐요.” 휴대폰 속의 사진을 보여주며 s가 묻는다. 그 속에는 부케를 연상시키는 한 다발의 소보록한 분홍색 꽃이 화면가득 피어있다.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꽃이다. 행운과 축복의 상징인 부케로는 결코 쓰일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아는 내 몸이 부르르 떨린다. 내가 휘두른 무딘 낫 끝에서도 맥없이 스러지던 단아한 꽃송이가 눈앞을 스쳐갔기 때문이다. “꽃이야 다 이쁘지.” 심드렁한 내 대답에 무안한지 그녀는 딴 것으로 화재를 돌렸지만 나는 이미 한 쪽으로 밀쳐 두었던 과거를 내 앞에 당겨 놓았다. 내가 갓 새댁으로 불리던 때 시어머니와 겨끔내기로 꺾어버려야 했던 꽃이었다. 이제 막 벙글기 시작한 꽃자루를 사방으로 오종종 매달고 있는 굵직한 ..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가작 디딤돌은 내 유년에 집안을 출입했던 들머리다. 살면서 수많은 디딤돌을 오르내렸던 고향집 디딤돌이 유독 기억에 떠오른 것은 왜일까. 산골아이가 넓은 세상으로 나가면서 다짐했던 결기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집과 마당의 경계에 놓인 디딤돌에서서 나는 맹세를 했다. 대를 이어 내려온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 성공을 해 돌아오겠다고. 그 결기를 묻어 놓았던 디딤돌이요, 힘찬 출발을 외쳤던 디딤돌이다. 디딤돌은 낮은데서 높은 곳으로 발을 딛고서야 올라갈 수 있는 물상이다. 발을 디디고 오르내리도록 마루 아래나 뜰에 놓은 돌이나, 디디고 다닐 수 있도록 드문드문 놓아둔 평평한 돌도 디딤돌에 속한다. 한옥의 경우 디딤돌을 딛고 올라서야 비로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건축물의 계단에 놓는 바닥..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