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박지에 피는 꽃 / 김순경
버려진 섬처럼 널브러져 있다. 닻을 내린 채 접안 순서를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느라 꿈쩍도 하지 않는다. 먼 길을 돌아온 배는 사력을 다한 마라톤 선수처럼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지친 몸을 바다에 뉜다. 언제부터 정박하고 있었는지도 알 수 없는 대형 화물선을 향해 바지선 한 척이 힘겹게 다가간다. 배는 암초에 뿌리를 내렸다. 어쩌다 파도가 철썩거려도 본체만체한다. 간을 보듯 부딪치던 물결도 제풀에 지쳤는지 이내 잦아든다. 잔물결에도 들썩거리는 작은 배와 달리 가끔 항구를 드나드는 큰 배가 만든 너울이 힘차게 밀려와도 수문장처럼 제자리를 지킨다. 때로는 탯줄을 자르고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안태본 조선소가 멀리 보여도 가만히 바라볼 뿐 말이 없다. 묘박지錨泊地는 닻을 내린 배들이 머무는 곳이다. 여객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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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6. 1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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