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의에서 무늬를 읽다 / 고경숙
대청호 앞에 서 있다. 두서없이 끌고 온 길들이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지도에서 영원히 삭제된 옛 문의 마을을 휩쓸고 가는 바람살이 맵다. 넓디넓은 호수를 돌려가면서 본다. 파리한 하늘을 담아낸 호수가 청동거울이다. 빛을 잃어 녹슬어가는 나를 희미하게 비춰낸다. 삭풍이 물 위를 흩뜨리자 호수 가장자리로부터 뻗어나간 잔물결들이 빠르게 움직인다. 호면湖面에 반사된 햇빛은 다시 미세한 각도로 박히고, 튕겨져 나간 틈으로 산산조각 나 반짝인다. 베어지고 할퀸 상처들이 눈부시다. 희뜩희뜩 잠겼다 떠오르는 은빛 물결들, 빛과 그림자로 연신 파닥거린다. 물살의 행간마다 중첩된 빛살문양이 단순하면서도 역동적이다. 윤슬은 수몰 마을이 존재감을 알리는 몸짓일까. 어둔 물속에서 밀어올린 파문들이 몽환적이다가 돌연 쓸쓸함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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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2. 23.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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