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촌의 단상 / 김애자
여름날, 칸나 잎에 빗방울 듣는 운치가 좋아 마당 구석구석 알뿌리를 심었다. 그러나 봄내 가뭄이 들어 좀체 싹틀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무논에 물이 떨어지고 개울마저 바닥을 드러낼 즈음 단비가 이틀간 내리 퍼붓자, 칸나는 마침내 부드러워진 지표를 밀치고 새 순을 내보냈다. 이제부터 칸나의 구근은 새 뿌리가 땅속에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제 살을 썩히다 흔적없이 스러지고 말 것이다. 생명을 이어주는 이러한 섭리를 생각하면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처음으로 장독대 뒤로 작은 밭을 일구고 파씨를 파종했는데 새로 돋은 어린잎들은 하나같이 까만 껍데기를 달고 나왔다. 실날같은 싹이 제 꼴을 갖출 때까지 껍질만 남은 몸으로 수분증발을 막아 주려는 어미씨의 눈물겨운 배려였던 것이다. 아무도 칸나나 파에게 이와 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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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11.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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