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을대문 / 김주선
어릴 적 우리 집은 솟을대문이 있는 기와집이었다. 중류층의 보통 집 구조였으나 새마을운동 이전에는 부러움을 사는 고택이었다.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집안일을 거드는 일꾼의 살림방이 있는 행랑채가 있었다. 대문은 두 개였다. 바깥마당에서 안마당으로 들어서는 중앙에 자리 잡은 솟을대문은 아버지의 벼슬 같은 자랑이었다. 행랑채는 살림방 외에 대문을 중심으로 외양간과 광(곳간)이 있었고, 집터를 아우르는 흙담 아래로 봉숭아가 피는 화단이 있었다. 목수인 조부에게 집 짓는 일을 배운 아버지는 전쟁통에 절반은 허물어진 어느 집 고택을 사, 기둥과 대들보를 분리해 지금의 집터로 옮겨왔다. 어찌 보면 한옥은 암수를 서로 끼워 맞추는 형식이었기에 분리가 쉽고 조립도 쉬웠다.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얹어 끼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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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7. 6.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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