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병 / 유강희
내가 예닐곱 살 무렵일 것이다. 아버지의 술심부름으로 나는 대두병을 들고 버스가 다니는 큰길가 점방으로 술을 받으러 간 적이 있다. 시골에서는 술을 사러 간다고 하지 않고 받으러 간다고 말한다. 이 말은 항상 술 앞에서 옷섶을 여미게 한다. 나는 한여름 시내를 건너고 들을 지나 대병이라고도 부르는 이 대두병에 막걸리를 받아서 훅훅 내리쬐는 땡볕 아래 어질어질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시내를 건너기 전 팽나무 밑에서 나는 그만 커다란 불경(?)을 저지르고 만다. 누가 볼세라 나무를 등지고 얼른 한 모금, 또 한 모금 숨죽여 술을 마셨던 것이다. 그 순간에도 병의 눈금을 조마조마 보아가면서 말이다. 땀은 찔찔 흐르고 목이 탄데다 호기심까지 칭칭 날 옥죄어 끝내 아버지 술을 탐하게 한 것이다. 뒤늦게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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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6. 30.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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