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감색목도리 / 정호경
나는 혹한의 겨울에도 목도리를 안 합니다. 돌이켜보면 이는 중3때의 사건이었으니 아득한 옛날 일이네요. 어렸을 때 몰래 어머니의 여우목도리를 두르고 동네 앞 논바닥에서 조그만 문패만한 판자에 철사를 대어 받친 외발 스케이트를 타는 동네 아이들 옆에서 한 시간이 넘게 서 있었지만, 누구 하나 내 여우목도리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감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장롱 속에 있어야 할 이 목도리가 어머니의 눈에 띄어 꾸지람을 들은 데다 아버지까지 알게 되는 날에는, 공부는 안 하고 언제나 엉뚱한 짓만 하고 다니는 내 종아리에 열 서너 대의 핏발이 서게 될 것은 너무나도 빤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피해 골방에 숨어 엎드린 채 졸다가 그만 저녁밥 때를 놓치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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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6. 3.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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