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자 / 최장순
‘酒전자’. 붉은 글씨가 내 눈을 낚아챘다. 술 酒, 삼수변만 보아도 컬컬한 목이 확 트일 것 같다. 주점이 연상되는 기발한 간판의 글씨에 벌써 불콰한 기운이 가슴 저 안쪽에서 올라오듯, 금방이라도 막걸리가 양은 대접으로 콸콸 쏟아질 것만 같다. 한 잔 걸치고 싶은 최근 무렵, 저 간판이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군상들을 불러 모을 것이다. 내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는 듯 간판 옆으로 집어등集魚燈처럼 매달린 주전자들은 하나같이 찌그러져 있다. 하기야 점잖은 얼굴로 나올 수 없는 곳이 주점이다. 화풀이라도 할 냥이면 냅다 무언가를 발로 차야할 것, 그러니 주전자가 온전할 리가 없다. 저 양은 주전자가 매끈하다면 대폿집은 서민과 거리가 멀다. 만만한 발길들이 지나갔듯, 화풀이로 내던졌듯, 누런 몰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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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0. 23.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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