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오후 / 고유진
오전 내내 먹구름만 차오르더니 정오가 지나서야 빗방울이 떨어진다. 한낮인데도 저물듯이 어둑하다. 일찌감치 청소를 끝내고 그윽한 조명 아래 책을 펼쳐본다. 이보다 더 안온할 수 있을까. 북데기 같은 머리를 질끈 묶어놔도 신경 쓸 일 없는 안식처이다. 그 공간이 나만의 섬인 양 포시랍게 안착한다. 최면에 걸린 듯 아지랑이 아른거리고 이윽고 눈이 감긴다. 완벽한 평화에 느닷없이 균열이 생긴다. 아랫집에서 괄괄하게 야단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저 여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악다구니를 내뿜는다. 점잖은 이웃을 만난 게 행운인지 불행인지 매일 들끓는 굉음을 분출해내며 육아의 설움과 자신의 건재함을 꾸준히 알린다. 점잖은 이웃답지 않게 야멸찬 표현을 쓰는 건, 저들이 지난밤 선을 넘는 치열한 싸움과 소음을 발산한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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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4. 2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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