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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관상쟁이
'어떤' 관상(觀相)쟁이가 있었는데, 어디서 왔는지 모르며 상서(相書 ; 관상하는 법을 쓴 책)도 읽지 않고 재래의 관상법도 본받지 않았으며 이상한 법으로 관상을 보므로 사람들이 '이상한 관상쟁이'라 불렀다. 고관, 신사, 남녀, 노유들이 다투어 찾아가고 제각기 모셔가 모조리 관상을 보았다.
그는 부귀스럽고 뚱뚱한 사람의 상을 보고는 '당신은 얼굴이 매우 여위었으니, 천하기론 당신만한 이가 없겠소.' 하였고, 빈천하고 여윈 사람의 상을 보고는 '당신은 얼굴이 살쪘으니, 귀하기론 당신만한 이가 드물겠소.' 하였다. 또 장님을 보고는 '눈이 밝군.' 하였고, 걸음이 빠르고 잘 뛰는 사람을 보고는 '절어서 걸음을 못 걷겠군.' 하였으며 얼굴이 예쁜 부인을 보고는 '혹 아름답고, 혹 추하오.' 하고 세속에서 이른바 너그럽고 어질다는 사람을 보고는 '만 사람을 상하게 할 분이로고.' 하였으며, 세속의 이른바 몹시 패륜한 사람을 보고는, '만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할 분이로고.' 하였다.
그의 관상 봄이 대개 비슷하여 다만 그 감추어진 이면을 말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당장 얼굴과 행동을 살핌이 모조리 반대였다. 뭇 사람들이 지껄여 전하기를 사기꾼이라 하여 국청(鞠廳 ; 중한 죄인을 신문하기 위하여 임시로 베푼 곳)에 잡아다가 그 거짓을 다스리려 하므로, 내가 홀로 말하기를 '대개 말이 먼저 거슬리고 뒤에 순(順)한 것이 있고, 밖으로 가깝고 안으론 먼 것이 있다. 그도 또한 눈이 있는데 어찌 살찐 자, 여윈 자, 눈먼 자를 몰라서 살찐 자를 가리켜 여위었다 하고, 여윈 자를 가리켜 살쪘다 하며, 눈먼 자를 가리켜 눈이 밝다 하겠는가. 이는 반드시 기특한 관상쟁이일 것이다. 내가 이에 목욕·세수·양치질하고, 옷깃을 정돈하여 고름을 매고 관상쟁이가 묵고 있는 곳을 찾아가 사람들을 물리치고 말하길
"그대가 누구 누구를 상보고, 무엇 무엇이라 말하였음은 어찌된 까닭인가?"
하니 그가 대답하는 말이,
"대개 부귀하면 교만하고 건방지며, 남을 능멸하고 업신여기는 마음이 자라나니 죄가 가득함이라, 하늘이 반듯이 뒤집을 것이요, 그래서 앞으로는 겨죽도 못 먹게 될 때가 있겠기로 여위었다 하였고, 장차는 몰락하여 보잘 것 없는 필부의 천한 몸이 되겠기로 '당신의 가족이 천하겠다.' 하였소.
빈천하면 뜻을 겸손히 하고 자기를 낮추어 근심하고 두려워하여 닦고 살필 뜻이 있으니 비(丕) '괘(卦 ; 점괘)'가 극하면 태(泰) '괘'가 반듯이 오는 법이라, 육식(肉食)의 징조가 이미 보이는 고로 살찌겠다 하였으며, 장차는 만석(萬石 ; 썩 많은 곡식) 십륜(十輪)의 귀함이 있겠기로 당신의 가족이 귀하겠다 하였소,
요망한 자태와 아름다운 색(色)을 엿보아 만지고, 진기한 것과 좋은 장난거리를 탐내며, 사람을 변화시켜 혹하게 만들고, 사람을 구부려 굽게[曲]하는 것이 눈인데, 이로 말미암아 불측한 욕에 이르게 될 터이니, 이것이 밝지 않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직 눈먼 자는 담박(淡泊 ;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함)하여 욕심이 없고 감촉이 없어 온몸이 욕(辱)을 멀리하여 어진 이와 깨달은 이보다 나으므로 밝은이라 하였소.
대개 민첩하면 날램을 숭상하고 날래면 뭇 사람을 능멸하는데,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혹은 자객이 되고 혹은 간당의 수령이 되어 끝내 정위(正尉 ; 법관)에게 묶이고, 옥졸이 지켜 발에는 차꼬(옛 형구(形具)의 한 가지. 기다란 두 개의 나무틀에 가로 구멍을 파서 죄인의 발목을 넣고 자물쇠로 채움), 목에는 나무칼이니, 도망하련들 어찌 달아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 다리를 절룩거려 못 걷겠다' 한 것이오.
대개 색(色)이란 것은 음란하고 사치하며 이상한 것을 좋아하는 자가 보면 구슬이나 옥처럼 예쁜 것이로되, 곧고 모나며 순박하고 검소한 자가 보면 흙이나 진흙처럼 추한 것이오. 그러므로 '혹 아름답다, 혹 추하다.' 한 것이오.
그리고 소위 어진 사람은 죽을 때에 꾸물꾸물하여 어리석게도 인간에 미련이 남아 울며불며 슬퍼함이 어린애가 어머니의 자애를 잃음 같기로, '만(萬) 사람을 상(傷)하는 이라.' 하였고, 소위 깜찍한 자는 그가 죽으매 길 가던 사람이 노래하고 마을에서 다행으로[和]여겨 양(羊)을 잡고 술을 마시며 서로 치하하여 웃어 입을 가누지 못하는 자와 춤추어 손목이 신[破]자가 있겠기에 만 사람을 기쁘게 할 이라 한 것이오.
"과연 내 말과 같다. 이는 실로 기특한 관상쟁이다. 그대의 말은 가히 써 명(螟)을 삼을 만하고, 표어(標語)를 삼을 만하다. 어찌 이를 빛에 연(沿)하고 얼굴을 따라 귀(貴)함을 말할 제 벌[蜂]의 눈에 늑대 목소리라 하여 굽은데 얽히고[滯] 상례(常禮)를 감돌아 제가 거룩한 체, 제가 영리한 체하는 자들에게 비할 것이냐." 하고 돌아와 나는 그의 대답을 적었다.
이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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