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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병을 배웠으면 처방도 배우게
아우 이약화(李若和)가 나에게서 공부를 가장 오래 배웠는데, 내게 배울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내가 병이 많은 것만 배웠다. 내가 매양 이를 장난삼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약화가 이미 나의 병을 배워버렸는데 내가 병을 처치하는 방도를 배우지 않는다면 되겠는가? 병을 처치하는 일을 잘 하게 되면 병이 도리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법이다. 약화가 그 어르신을 모시고 예천군(醴泉郡)으로 가면서 나에게 전송의 말을 부탁하였다. 나는 답을 하지 못하고, “내 병이 더욱 심해졌다.”라고 하였지만, 약화가 같은 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이에 글을 보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내 병을 처치한 것에 대하여 말을 하리니, 자네는 들어보게나. 음식은 사람이 원하는 것이지만, 내가 병 때문에 가까이 하지 않았고, 여색은 사람이 원하는 것이지만 내가 병 때문에 멀리하였네. 재물과 명리(名利) 역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지만, 내가 병 때문에 꾀하지 못하였네. 마음에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의 일곱 가지 감정이 동탕쳐서 내 병을 심하게 한다면 그 지나친 생각을 절제하고, 사지가 너무 편안하여 내 병 처치에 방해가 된다면 몸을 수고롭게 하였다네. 음식을 가까이 하지 않고 여색을 멀리하며 재물을 꾀하지 아니하며 감정을 동탕치게 하지 않고 육신을 편안하게 하지 않았으니, 내가 병이 아니었더라면 어찌 이렇게 할 수 있었겠는가? 이것이 내가 병을 잘 처치하여 도리어 이득이 된 것이라네. 이제 자네가 벼슬하러 가시는 부친을 따라가는데, 입에는 음식이 풍족할 것이요, 눈에는 여색이 풍성할 것이며, 보고 듣는 것에는 재물에 대한 것이 많을 것이니, 감정이 동탕치고 육신이 편안하게 될 것이네. 그리고 때때로 서울에 와서 벼슬길에 오를 시험을 치르게 되면 명리에 유혹되기도 할 것이네. 내가 이 때문에 자네가 내 병을 단순하게 배울 뿐만 아니라 내가 병을 처치하는 방도까지 함께 배우기를 바라는 것이라네. 어쩌면 아마도 자네는 나를 비웃으며 이렇게 생각하겠지. ‘스스로 병을 잘 처치한다고 하면서도 병이 낫지 않으니, 병에 대한 처치가 효과가 없는 것 아닌가?’ 이는 그러하지 않다네. 내가 내 병을 처치하는 방도를 알지 못하였더라면, 어찌 병이 나을 수 있었겠는가? 병이 낫지 않았다면 나는 죽은 지 오래되었을 것일세.”
김종후(金鍾厚,1721~1780),〈장난삼아 병에 대한 글을 지어 아우 이약화에게 주다(病戱寄贈李弟若和)〉《본암집(本庵集)》
한국문집총간《본암집》중에서
해설 - 이종묵(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김종후는 조선 후기 산림의 학자다. 좌의정을 지낸 벽파의 영수 김종수(金鍾秀)의 형이기에 혼란한 정국에 일관성이 부족한 처신을 보여 비판을 받기도 한 인물이다. 사람이 어찌 흠이 없겠는가? 그 흠을 잘 고치면 오히려 득이 될 수 있다. 김종후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김종후는 송덕상(宋德相), 김양행(金亮行), 유언집(兪彥鏶) 등과 함께 정조 때의 대표적인 산림의 학자다. 학문이 높았겠지만 스스로 잘못이 없을 수 없다고 여겼다.
그 제자 중에 이상매(李商梅)라는 이가 있었다. 자는 약화(若和)인데 나중에 이름을 의교(義敎)로 바꾸었다. 고모뻘 되는 사람의 아들이라 아우라 불렀다. 그 부친이 이명중(李明中)인데 지방관으로 나가게 되자 따라 가게 되었다. 이때 김종후가 전별의 뜻으로 이 글을 지어주었다.
이 글의 핵심어는 병(病)이다. 김종후는 이 병을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였다. 하나는 학문의 병이요, 하나는 육체의 병이다. 김종후는 제자가 자신의 학문의 병을 배웠을까 우려하고, 자신의 육체의 병을 치료한 방도를 이야기하였다. 김종후는 병으로 인하여 기름진 음식이나 여색을 멀리하였고 또 돈과 명예를 추구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병이 날까 우려하여 감정을 절제하고 적당하게 운동을 하였다. 이러한 삶이 육체의 병을 낫게 하였다고 하면서, 제자로 하여금 자신과 같은 산림학자의 삶을 살도록 유도하였다. 아마 제자가 부귀영화를 꿈꾸었나 보다.
김종후는 학문을 함에 있어서 병을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요, 병이 없어져야만 온전한 사람이 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자신의 서재 이름을 담간온재(淡簡溫齋)라 하였다. 『중용』의 “군자의 도는 담박하면서도 싫증이 나지 않고 간략하면서도 문채가 나고 따스하면서도 조리가 있다(君子之道, 淡而不厭, 簡而文, 溫而理.)”는 구절에서 한 글자씩 딴 것이다. 담박하지 못한 병 때문에 성색(聲色)과 부귀와 공명을 바라는 마음이 생겨나고, 간략하지 못한 병 때문에 일을 처리하면서 지나치게 세세하게 따지고 들며, 따스하지 못한 병 때문에 곧게 처신하려 하면서도 정작 일의 경중을 헤아리지 못하여 후회하게 된다고 하였다. 병의 처방으로 담간온(淡簡溫)을 자신의 병을 다스리는 처방으로 내건 것이다. 그리고 “아, 스스로 병을 알고 처방을 알지만 약을 쓰는 데 힘을 쏟지 않는 것은 곧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스스로를 속이는 것은 또 병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김종후가 제시한 학문과 마음의 병을 낫게 하는 처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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