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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다리를 하는 까닭


양반다리는 결가부좌라 하여 불가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지만, 조선의 선비들이 누구나 앉을 때 이렇게 앉았다. 입식이 생활화되자 양반다리는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자세가 되었다. 조선의 선비 중에도 양반다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이제 저 광대들의 놀이는 지극히 미천한 자들의 기예이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그 사지와 온 몸의 움직임과 변화가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따르지 않음이 없는 것은 천부적인 것이 아니라 연습을 하여 그 방도를 터득한 결과다. 그러나 옷과 밥이 달린 문제가 아닌데도 그 정성을 쌓는 일은 또 누가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양반다리로 앉는 일은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때문에 군자가 갖추어야 할 아홉 가지 몸가짐1 중에 양반다리로 앉는 것을 말하지 않은 것이니, 그 일이 말하지 않아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천한 광대들은 여러 사람들이 지극히 어렵게 여기는 바도 능히 할 수 있지만, 나는 온 세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양반다리로 앉는 일을 할 수가 없다.

이는 무슨 이유 때문인가? 연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나도 또한 연습을 하였다. 하루에 되지 않으면 이틀 하고, 이틀 해도 되지 않으면 사흘 하였다. 10일을 하고 20일을 하였지만 끝내 되지 않았다. 그 방도를 터득하지 못하였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 또한 그 방도를 찾아보았다. 왼발을 오른발에 올려놓으면 오른발이 저렸고, 오른발을 왼발에 올려놓으면 왼발이 또 저렸다. 발을 포개지 않으니 양쪽 발 모두 저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연습을 하지 않은 잘못이 아니요, 방도를 구하지 않은 잘못도 아니었으니 바로 병 때문이었다.

내 귀는 온 세상의 소리를 다 들을 수 있고 내 눈은 온 세상의 색을 다 볼 수 있으며, 내 입은 온 세상의 말을 다 할 수가 있고, 내 마음은 온 세상의 사물을 다 분간할 수 있다. 정말 그 도(道)를 얻는다면 양반다리로 앉지 못한다 하더라도 성현이 되기에 무엇이 방해가 될 것인가? 정말 그 도를 얻지 못한다면 비록 양반다리를 잘 한다 하더라도 장차 이를 어디에 쓸 것인가? 이에 내가 그 마음과 입과 귀와 눈이 온전한 것을 스스로 다행으로 여기고, 다리가 저린 것을 불행으로 여기지 않았다.

비록 그러하지만 바깥의 용모를 바르게 하는 것은 안을 편안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갓을 씀에 있어서, 젖히면 오만해지고 구부리면 거칠어지며, 기울이면 삐딱해지고 똑바로 하면 단정해지는 것이다. 갓은 하나의 사물일 뿐이지만, 구부리고 젖히고 기울이고 똑바로 하고에 따라 마음이 따라서 변하게 되는 것이 이와 같다. 하물며 앉고 눕고 일어나고 멈추고 하는 큰일은 말해 무엇하랴. 내가 이에 양반다리를 하지 못하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할 수 없었다.

아, 내가 성현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어찌 옷과 밥을 구하고자 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끝내 내 신체의 병을 탓하여 양반다리를 할 수 없는 것을 편하게 여긴다면 광대들이 정성을 모아 기예를 부리는 것에 부끄럽지 않겠는가? 이로써 경계를 삼는다.

홍낙명(洪樂命,1722-1784),〈양반다리의 교훈(跪戒)〉《풍산세고(豐山世稿)》 권5)
 


정경순(1721-1795) 초상화_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해 설 - 이종묵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홍낙명은 자가 자순(子順), 호가 신재(新齋)로, 18세기 정국을 주도한 명문 남양 홍씨 집안사람이다. 대제학을 지내고 판서의 벼슬을 하였으니 청요직을 다 누렸다 하겠다. 학문뿐만 아니라 문학에도 뛰어나 주목할 만한 글을 많이 남겼으나, 그 문집 《신재집(新齋集)》이 간행되지 못하고 연세대학에 필사본 한 질만 전하여 깊이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홍낙명은 누구나 쉽게 하는 양반다리를 하지 못하였다. 양반의 상징이라 할 양반다리를 할 수 없었기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맹자》에 나온 대로, 손가락 하나라도 남과 같지 못하면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고치려 든 것처럼, 10일이고 20일이고 꾸준히 연습을 하고, 또 여러 가지 다른 자세를 취하여 자신에게 알맞은 양반다리를 해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되지 않았다. 결국 자신의 다리 구조 때문에 양반다리를 할 수 없는 것이라 여기고 포기하였다.

 

맹자는 무명지 하나가 펴지지 않으면 고치려 들지만, 마음이 남과 같지 못하면 걱정할 줄 모르니, 이는 작은 것만 알고 큰 것은 알지 못하는 것이라 개탄하였다. 이 말로 홍낙명은 위안으로 삼았다. 비록 양반다리를 하지는 못하지만, 남보다 눈이 밝고 귀가 밝으며, 말도 잘할 뿐만 아니라 이치를 잘 분별할 줄 아는 마음을 지닌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러나 홍낙명은 다시 생각하였다. 광대들이 각고의 노력을 통하여 기예를 익혀 공연을 하면 사람들은 남들이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일이라 여기지만, 이는 타고난 재주가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에서 나온 것이다. 홍낙명은, 광대가 먹고 살기 위하여 남들이 하지 못하는 재주를 가지게 되었지만, 자신은 신체구조를 탓하면서 누구나 하는 양반다리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노력이 부족한 때문이라 여겼다. 맹자가 이른 대로, 하지 않은 것이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여기고 생각을 바꾸어 먹은 것이다.

 

  1. 《예기》에서 이른 구용(九容)을 말한다. 곧 발걸음은 무겁고[足容重], 손 모양은 공손하며[手容恭], 눈 모양은 단정하고[目容端], 입 모양은 고요하며[口容止], 목소리는 조용하고[聲容靜], 머리 모양은 곧으며[頭容直], 기상은 엄숙하고[氣容肅], 서 있는 모습은 덕이 있으며[立容德], 얼굴빛은 장엄하다[色容莊]는 것을 가리킨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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