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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신 연금은 챙기고 통일세는 걷고


 

김정은 등장 이후 한반도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북한이 갑자기 붕괴하면서 불안해지는 상황, 북이 개방을 거쳐 점진적 통일이 진행되는 상황, 중국이 북한을 자기네 성(省)처럼 관리하는 상황, 북한이 "그래도 우리 민족끼리"라며 한국정부와 기업들에 손을 내미는 상황 같은 추론들이 나오고 있다.

8·15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제안한 통일세(統一稅)를 걷는 방안을 연구하는 준비팀도 국회에서 가동되기 시작했다. 어떤 형태로든 통일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정부 안에선 수백조원에서 수천조원까지 거론된다.

이 어마어마한 통일비용은 IMF환란, 카드대란,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경제위기 때마다 '튼튼한 재정(財政)'으로 버텨온 한국 경제에 큰 도전이 될 수 있다.

이런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해 미리 통일비용을 마련하자는 데 반대의 목소리가 나올 이유가 없다. 하지만 국민 사이에선 벌써 불황 때문에 먹고살기 힘든데 무슨 세금을 또 만들겠다는 것이냐는 불평도 들린다. 봉급생활자들은 "우리만 봉이 될 게 뻔하다"고 말한다.

앞으로 국회가 어떤 방식으로든 통일비용을 만드는 법을 만들면 그 돈의 상당액은 중산층 이상 가계와 대기업, 소비를 많이 하는 사람에게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든 국회가 납세자들 호주머니에서 '새 돈'을 빼가는 것은 간단치 않은 일이다. 상황에 따라선 납세자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

더구나 지금 우리 국회의 모습으로는 통일세를 걷는다는 것이 더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우리 국회가 국민을 설득할 역량과 믿음을 갖추었느냐에 의문이 든다.

대의(代議)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에서 국회의원들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국민 세금을 자기 돈보다 더 아끼는 것이다. 세금이 엉뚱한 데로 새나가지 않도록 눈을 부릅뜨고 관리 감독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정치권은 '서민' 대(對) '부자', 대기업 대 중소기업 편가르기를 하면서 국민 세금을 헤프게 쓰고 있다. 나라 미래와 경제성장과 연결되는 정책을 발굴해 세금을 쓰기보다는 당장의 인기를 노리고 자기 세력을 향해 생색을 내는 데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

은퇴 후 65세부터 사망할 때까지 매달 120만원씩 '종신(終身) 연금'을 챙겨 가려고 스스로 법을 고친 사람들이 한국의 국회의원들이다. 의회활동을 잘하고 열심히 봉사해서 국가와 국민에게 인정받는 의원들에겐 수억 원의 연금도 아깝지 않다.

하지만 정말 동전 한 개 주고 싶지 않은 의원들도 많다. 법을 만드는 국회를 도끼와 각목의 폭력장으로 만들어 대한민국을 세계의 조롱거리로 만든 의원들에게 국민 호주머니를 털어 그들의 은퇴 후까지 챙겨줄 이유가 있는가.

광우병 사태 때 길거리로 뛰쳐나와 거짓말로 국민을 선동해 나라를 마비시키고, 천안함 사건을 왜곡해서 국가안보를 뒤흔드는 이들도 배지 한 번 달았다고 해서 '종신 연금'을 받게 돼 있다. 수십 년간 개미처럼 일해 꼬박꼬박 세금 내고 연금 부어서 은퇴 후를 준비하는 국민들이 어떻게 이런 국회를 믿고 통일세를 내고 싶어 하겠는가.

출처 : 조선일보(2010.10.4, 윤영신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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