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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활엽의 생존방식 / 김동수

부흐고비 2018. 8. 14. 10:07

활엽의 생존방식 / 김동수
2014 산림문화작품대전 동상


겨울산은 묵묵하고 담담하다. 골격을 드러낸 채 참선에 든 수묵담채화 속에서 차가운 공기를 마시고 뜨거운 숨을 내쉬다보면 마음도 시나브로 담백해진다. 산은 철마다 매력이 있지만, 삶의 장식을 하나씩 털어내는 인생의 가을이라서 그런지 이제는 겨울에 마음이 더 끌린다.

​ 발가벗어도 부끄럽지 않은 시절, 산골에서는 산이 친구였다. 마음이 나만한 다람쥐와 도롱뇽에게 장난을 걸고, 진달래, 산딸기를 따먹고, 머루랑 다래랑 놀다보면 어느새 키가 한 뼘쯤 자랐다. 때가 묻지 않은 연둣빛 소년에게 나무는 두 가지 심상을 주었다. 햇살바람에 이파리를 팔랑이는 활엽수는 친근감이 들었고 하늘도 찌를 듯 뾰족한 침엽수는 경외감이 들었다.

​ 산에서 꿈을 키운 소년은 청년이 되자 산골을 떠났다. 법관이 되기 위해 도시 한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법서를 펼쳤으나 가난한 고학생에게 빌딩숲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도전에 수차례 실패한 후 서른이 넘어 사업을 시작했다. 맨손으로 일군 땅에 꽃이 피고 수확이 쏠쏠한 마흔 무렵, 여럿이 뜻을 모아 지방에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그러나 망울을 맺기도 전에 내분에 휘말렸다. 설상가상, 재개발 사업으로 본점을 부랴부랴 이전했지만, 그것이 소유권을 놓고 분쟁하는 건물일 줄이야…. 양쪽을 오가며 지루한 법정 싸움을 하는 동안 끝내 사업은 고사枯死했고 그토록 드나들던 벌 나비도 떠났다.

​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 안에서 돋는 증오의 손톱이 누군가를 할퀼 것만 같았다. 어디로 가고 언제 온다는 기약도 없이 행랑을 꾸렸다. 한때 나를 지탱하는 힘이기도 했던 욕망은 파도에 실어 부수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지글거리는 분노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여기저기 떠돌다가 닿은 내 생의 원점, 함백산은 탕아蕩兒되어 돌아가도 내치지 않는 어머니처럼 나를 끌어안았다. 한동안 산사에 머물기로 했다. 유년의 골짜기에서 가재에게 장난을 걸고 함박꽃 향기 그윽한 추억의 능선을 거닐며 키 작은 들꽃에게 말을 걸다보니 어느새 마음은 동심이었다. 비움의 계절을 지나 마음에 여백이 생긴 나는 자작나무 수채화 숲을 지나 겨울 속으로 들어갔다.

​ 자신을 모태로 하는 생명을 내면으로 불러들이면 산도 참선에 든다. 집착을 버리고 미련까지 활활 태운 이파리는 윤회의 몸짓을 바스락거리고 나뭇가지를 부지런히 뛰어넘던 다람쥐는 긴 휴식에 든다. 밤낮없이 재잘대며 바다로 가던 물도 걸음을 멈춘 낙목한천落木寒天에는 삭풍만 무리 지어 이리저리 몰려다닐 뿐, 가끔 산짐승 소리가 밤 이슥한 고요를 깬다. 땅속에서 생명이 꿈을 꾸는 정중동 속에서 나 또한 한 그루 나무가 되어 겨울 경전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 명상의 창밖에 이윽고 눈이 내리고….

​ 발가벗은 물상들이 일제히 잠든 산, 나 또한 순수한 언어를 덮고 동면에 들 수 있다면 한 시절 시름일랑 다 잊고 새봄을 맞을 텐데, 하늘은 우리에게 체온은 준 대신 순환의 유전자를 주지 않았다. 마음의 무장을 단단히 하고 산에 올랐으나 설경에 취하기는 잠시, 모산이 후려치는 물푸레나무 회초리는 어머니의 그것보다 따끔했다. 그렇게 겨울산을 오르내리며 나는 활엽의 생존법을 다시 배워야 했다.

​ 마을에 곳간이 차고 새 둥지가 비면, 활엽은 비움이 서툰 자들의 느낌표만 울긋불긋 흩날리게 해놓고 심지를 내린다. 세상을 푸르게 떠받치느라 온 몸에 응고된 멍을 갈아 마음의 붓을 든다. 몸 동강나야 개봉할 이야기, 벌 나비와 나눈 아지랑이 같은 밀담은 나이테에 기록하고 비바람에 가지가 부러진 심정은 옹이에 담는다. 내 품에서 부화했으나 날개를 펴지 못하고 스러진 아기 새의 사연은 이다음에 휘파람새가 전절하기로 한다.

​ 내 안으로 떠나는 순례, 해도 달도 없는 길에서 영혼의 빛을 바람만바람만 따라가면 푸른 자의 사원에 닿는다. 산문山門을 열고 참선의 뜰에 들면 삭풍이 곁가지를 흔들어도 뿌리 깊은 자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더 깊은 혈맥을 찾아 땅속을 더듬는 일은 돌부리에 걸려 마음까지 접질릴지라도 길을 가야하는 자들의 밥과 쉼터를 짓는 푸른 노동임을, 생명의 경전 앞에서 암송하는 푸른 자의 길은 발 달린 자의 길보다 심지 깊다.

​ 침엽은 고고하다. 달콤한 꿀로 벌 나비를 유혹하거나 배고픈 자에게 열매를 풍성하게 주지 않는다. 세상을 활기차게 하는 활엽이 저마다의 색으로 잎을 물들여 생을 경작하느라 땀 흘린 자들에게 갈채를 보내도 내 일 아닌 양 무심하다. 행자의 목마른 물음에 실존을 말없이 설법하는 철학자처럼 따끔한 화두만 던질 뿐, 저들만 푸른 겨울이면 허공을 콕콕 찔러 보거나 벼랑 위에서 휘파람을 불며 세상을 내려다보기만 한다.

​ 겨울산의 화룡점정은 주목이었다. 우주와 교신하는 안테나인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호령을 말없이 세상에 전하는 영매인가. 하늘과 땅의 경계에서 살아 천년 죽어 천년 고사목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자꾸만 작아졌다. 인간이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다지만 오래도록 하늘땅의 순행을 터득한 침엽의 내공만할까. 무수한 성상도 다 비운 채 설원을 오롯이 굽어보는 형해形骸를 앞에 나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완장을 가만히 내려놓아야 했다. 그것은 방황에 마침표를 찍는 의식이었다.

​ 산을 누비며 푸른 기운을 충전하던 청년기​, 발아래 펼쳐지는 산하를 내려다보면 세상을 정복한 양 짜릿했다. 그러나 그것은 젊은 날의 호기일 뿐, 세상을 푸르게 하는 활엽의 내면수행과 형체만으로도 나태를 따끔하게 찌르는 침엽의 호연지기를 가슴에 담지 못했다. 무릎이 깨지고 마음이 닿으면 깨달음을 얻는다고 했는가. 그래도, 사람은 영리해서 나 아닌 다른 것에서 모자람을 채우고 계절을 순환하며 스스로 그런 자연의 순리를 배울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多幸인가. 세상을 무심히 관조하는 침엽으로 살 수 없다면 한 그루 활엽으로 활기차게 살아볼 일이다.

​ 남녘에 화신花神이 상륙했다는 소식이 들릴 즈음 나는 모산母山을 떠났다. 뒷일을 수습한 다음 새로운 경작지를 찾는 사이 활엽은 참선에서 깨어나 가지 끝에 불을 댕겼다. 몸도 마음도 홀가분한 그해 봄 연둣빛은 유난히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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