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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카라꽃처럼 / 최보금

부흐고비 2019. 11. 6. 23:19

카라꽃처럼 / 최보금
2012년 12월 《수필과비평》 신인상


패션쇼가 시작되었다. 아득히 밀려오는 청아한 소리가 정적을 깨운다. 서서히 색색깔의 불빛이 무대 위로 떨어진다. 딸아이가 만든 옷이 세 번째로 등장했다. 푸른 달빛을 깨우고 깊은 밤을 거니는 숲속의 여왕 ‘화조와 월석’이다. 런웨이를 지나 점점 중앙무대로 다가온다. 오랜 기억속의 가로막이 가슴에 와 얹힌다. 주책없이 눈물이 흐른다.

딸아이가 중학교에 다닐 때였다. 친구들과 시내에서 놀다 온 아이 손에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옷이었다. 스스로 옷을 살 만큼 자란 것이 대견하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펼쳐 든 순간, 내 표정은 여지없이 일그러졌다. 어깨며 가슴팍이 훤히 드러나는 모양새다. 돌리고 뒤집어도 허용치가 나오지 않았다. 볼썽사납던 옷차림의 우매한 대열에 내 딸도 한몫하려던 것이다. “정신 똑바로 박힌 사람은 못 입겠구먼! 좋게 말할 때 당장 갖다 버려!” 그 옷 입은 꼴만은 절대 못 보겠다고 했다. 딸아이는 현관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입지 않겠다고 했다. 푼푼이 모아 별러서 산 것이니 아까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속 또한 모를 리 없다. 내 눈을 피해 몰래 입고 다닐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생각 없는 고집에 가위질이 처방되고, 옷은 결국 걸레가 되었다.

며칠 전 시내 서점에 갔을 때다. 북새통으로 울렁증이 일어 구석진 자리에서 한숨을 돌렸다. 분주히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에도 끊이지 않는 발길이다.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지성들의 활기찬 충전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고등학생이나 됨 직한 여자아이들이 무리 지어 지나간다.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선 뒷모습을 보니 아랫도리 옷이 보이지 않는다. 간간이 거론되는 하의 실종이다. 건강이 어떠니, 보기가 어떠니 백날 떠들어도 소용이 없다. 에스컬레이터가 높이 올라갈수록 눈길도 묻어간다.

여성들의 옷차림이 짧아질수록 불경기라고 했다. 요즘은 천 값보다 디자인 값이 우선하니 재룟값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여성의 경제적 의존율이 남성에게 기울 때, 남성에게 잘 보이려고 나타나는 여성의 무의식적 본능이라고 한다. 부모 품에 자라는 아이들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말이다. 단순히 예뻐 보이고, 튀어 보이고 싶어서란다. 일부 여학생들의 교복 치마 길이를 본다. 걱정을 넘어 실소를 금치 못한다. 손바닥만 하게 줄여 입고도 모자라 허리를 추어올리고, 접어 올려, 아예 벗어 버릴 기세다. 연예인의 옷차림을 우상으로 무조건 따라하는 아이들이다. 누구의 무슨 말이든 귓등으로 흘려듣는 나이인 걸 보면, 가르침이 때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고등학교 시절. 교복 자율화가 되면서 나 역시 패션 선도자인 척 우쭐거렸다. 청바지에 티셔츠가 주류이던 시절, 갖가지 원색 옷차림으로 유난을 떨었다. ‘패션쇼 하러 학교에 오느냐?’는 선생님의 핀잔도 달게 받아 들었다. 딱히 잘 보일 곳도, 봐 줄 사람도 없지만 혼자 멋에 신이 났다. 얼어 죽든, 말든 아무 상관없던 때였다.

졸업을 앞둔 겨울이었다. 검은색 미니스커트를 샀다. 하는 일 없이 친구들과 어울려 온종일 쏘다녔다. 꽁꽁 얼어 감각조차 없지만 즐겁기만 했다. 집으로 올 때였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그대로 처박혀 나동그라진 것이다. 치마통이 좁아 헛방다리를 짚었다. 차마 일어설 수가 없었다. 흙투성이 옷에, 찢어진 스타킹은 고사하고,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에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뒤돌아볼 틈도 없이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골목 뒤로 숨었다. 소리 내어 울 수도 없었다. 무릎에는 핏물이, 눈에는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치마는 애당초 개 발에 편자였다. 고소한 마음으로 지켜봤을 그들의 비웃음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얼마 전 모임에서 지인 한 분이 문제를 냈다. 여성이 지켜야 할 도리 중에 가장 중요한 도리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모두 눈을 굴리며 머릿속을 뒤적였다. 자식의 도리, 아내의 도리, 부모의 도리, 지극히 교과서적인 답들이 쏟아져 나왔다. 땡! 땡! 땡! 통과하지 못한 도리들이 주저앉았다. 답은 아랫도리였다. 건강을, 정조를, 체면을, 이런저런 반문을 하며 괜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은 물론, 쉰을 넘긴 중년부인까지 핫팬츠 차림인데 아랫도리 지키기는 어디부터 해야 할까?

하의 실종보다 개념 실종이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누드도 패션 일부라고 주장하는 시대지만, 다른 동물처럼 제 몸 껍질로 살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미우치아 프라다는 옷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입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했다. 옷이란 표현과 소통의 수단인 동시에, 내재한 자의식을 보여주는 침묵과 절제의 또 다른 언어임이 틀림이 없다.

최종심사가 시작되었다. 딸아이의 옷이 다시 올라왔다. 머리 위로 우뚝 솟은 노란 꽃잎이 열두 폭 풀색 치마 위에 고운 카라꽃이 되어 피어난다. 쏟아지는 불빛 아래 상처로 얼룩진 내 아이의 꿈이다. 기억 저편 분리수거함 앞에 울고 있는 어린 딸을 본다.



당선소감

문학은 건조한 일상에 또 다름을 쫓아 기웃거린 곳입니다. 무작정 들어선 글쓰기가 오뉴월 무논을 첨벙거리듯 지금도 두렵기만 합니다. 건성으로 본다는 핀잔을 들으며 퇴고를 도와주던 사랑스러운 딸과 아낌없이 응원해주는 가족들에게 먼저 수상의 기쁨을 돌립니다. 살아온 날, 살아갈 날, 소소한 기억들을 잘 다독이며 수필을 쓰는 것보다 수필 같은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서 말 구슬은 아니지만, 콩 타작마당에 낱알이라도 부지런히 주워야 입이라도 즐거울 것 같아서요. 겁 없이 받아든 상입니다. 열심히 하라는 말씀으로 알고 콩 바가지 들고 부지런히 뛰겠습니다. 부족한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그동안 지도해주신 선생님 그리고 깊은 애정으로 격려해주신 문우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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