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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날의 모노로그 / 최민자


서울 적설량 25.8센티미터 107년만의 폭설, 기상관측 이래 최고의 눈이래요. 차들은 아예 멈추어 섰고 구청에서도 눈 치우기를 포기한 것 같아요. 한 나절 내린 눈으로 도시가 이렇게 마비되어 버리다니 눈은 그 순백의 언어로 길의 주인이 차가 아니듯 세상의 주인이 인간이 아니라고 고요하게 일깨워주네요. 눈 쌓인 거리를 내려다보다가 문정희 시인의 「한계령의 연가」가 생각나 냉큼 찾아 읽어보았지요.

...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 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정말 그렇게 내 책임이 아닌 다른 핑계나 불가피성으로 삶의 알리바이를 둘러댈 수 있다면 하는 상상에 설레어보다가 치과 약속 때문에 서둘러 중무장을 하고 나왔지요. 이웃 아파트 상가까지 이십 분 쯤 걸어가야 하는 길. 눈이 무릎까지 차서 뒤뚱뒤뚱 걷는 사람들 모습이 사오십 년 전쯤으로 돌아간 듯하였지요. 모자에, 목도리에, 패딩 점퍼에, 눈만 빼꼼한 부엉이 행색이 그리 싫지만은 않은 표정들이었어요.

진료실 의자에 기대 않자 있으려니 창밖 은행나무 빈 가지에 쌓인 눈이 바람결에 한 뭉텅이씩 툭, 흰 새 한 마리 내려앉듯 떨어져 내리곤 하였어요. 이십 년 단골인 치과 선생은 오늘도 내게 말을 걸어왔어요.

"눈이 이렇게 왔는데도 하나도 설레거나 즐겁지가 않아요. 눈 때문에 병원 오는 사람들이 고생스럽겠구나하는 생각뿐. 삼십대 말 사십대 초반까지는 가을바람만 불어도 찬 기운이 스르르, 가슴 안으로 스미곤 했는데...."

"그래요?"

언제나처럼 내 입은 치과용 미러와 핀셋, 석션팁 같은 것들로 재갈이 물려 있었지만 잠시 틈을 타 짧게 응수해주었지요. 시간이 더 있었으면 '그래요?' 다음에 '벌써 배터리가 고장 나신 거군요' 라든지,' 그런 남자를 요새 뭐라 하는지 아세요? 건어물남!'이라고 덧붙였을지 모르지요. 그랬다면 그가 웃어젖혔겠지요. 소금 후추 알맞게 뿌려진 머리카락을 가볍게 뒤로 쓸어 넘기며, 시시한 농담에도 크게 웃는다는 건 살아가는 일의 쓸쓸함을 은폐하려는 무의식의 발로일 듯해요.

일류대학 출신에 훤칠하고 잘 생긴데다 성실하고 친절하기까지 한 치과 선생은 우리 동네에서는 인기 최고지요. 이 동네뿐 아니라 강남이나 경기도로 이사를 간 사람들까지 몇 십 년 단골들이 몇 시간씩 줄을 설 지경이니까요. 아무리 환자가 밀려도 그는 절대로 인상을 구기지 않는 웃는 얼굴로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아요. 대기실 가득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마치 그 한 사람만을 위한 주치의 인 것처럼 누구에게나 꼼꼼하고 정성스럽게 진료를 해요. 바가지 씌우는 일도 당연히 없고요. 내가 그를 더욱 신뢰하게 된 것은 개업 초부터 낯을 익혀 온 간호사 때문이기도 해요. 포니테일로 찰랑거리던 그녀의 헤어스타일이 구불구불한 파마머리를 거쳐 업스타일로 올라붙을 때까지 참 세월이 많이도 흘렀네요.

"그럼 여기까지 걸어오시면서 설레고 즐겁던가요?"
다시 재갈이 물려진 나는 간신히 고개를 주억거렸지요.
"그렇다면, 제가 더 어른이네요. 그만큼 내공이 쌓여 흔들리지 않는 거니까."
그 말을 하면서 그는 아마 자기의 나이를 의식하였겠지요. 내가 그보다 세 살이 위라는 것을 알기 이전까지 그는 나를 복학생과 미팅하러 나온 신입생 취급을 했으니까요. 그가 그렇게 마스크를 쓰고 핀셋이나 익스플로러 같은 것을 내 입 안에 잔뜩 집어넣은 채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은 그러니까 몇 년 전, 고장 난 보철물을 갈아 끼우려고 오랜만에 들렀던 때부터였어요.

"참 곱게 나이드시네요."
"선생님도 멋지게 늙고 계세요."
그렇게 시작했던 것 같아요. 대학을 졸업한 딸애가 유치를 갈 때부터 드나들었으니 그 정도의 인사는 주고받을 만하다 했던 게지요. 덕담삼아 붙여준 형용사 하나씩이 마음의 거리를 한 발짝쯤 당겨준 것일까요. 선천적으로 부실한 잇몸에 어린 중학생이 찬 축구공에 운수 사납게 앞니가 나가는 바람에 팔자에 없는 보철물까지 끼고 사는 나는 치료에 불가결한 말 이외엔 그동안 별반 아는 체를 안했지요. 그런데 그렇게 말문이 트이고 나서는 주치의라도 되는 듯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찌어찌 알게 된 그가 공사기간 내내 이야기를 붙이곤 해서이기도 하지만요.

"저기 말이지요, 육신과 영혼이 동시에 늙지 않는 것이 불행일까요. 다행일까요?" 라든지 세상에서 가장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 뭐라고 생각하세요?"등등.
"치과의산가요?"
상상력까지 재갈을 물린 나는 두 번째 질문에 그렇게 답했지요.
그렇게 단박에 답이 나오는 질문을 던질 리 없다 싶으면서도
"아니요."
아니면?
"펀드매니저래요. 치과의사는 그 다음이에요."

조금은 과장이겠지만 딴엔 이해가 가기도 해요. 붉으죽죽한 갱도 안, 이끼 낀 바위돌들이나 들여다보다 삼십 년이 흘러버린 사람. 머리 위를 비추는 태양도, 망망한 바다도, 애써 눈감고 살아왔겠죠. 사막 같은 삶이지요라고 언젠가 그가 이야기했듯이. 하긴 일상은 누구든 사막이지요. 정상을 향하여 묵묵히 오르기만 해도 좋을 산과는 달리 사막에는 바라봐야 할 푯대가 없잖아요. 끝없이 멀어지는 지평선을 향하여 어디엔가 숨어 있을 오아시스를 꿈꾸며 걷고 또 걸어야 할 뿐.

다음에 그는 푸른빛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어요.
"푸른 하늘, 푸른 바다, 푸른 눈...... 푸른빛은 거리와 상관이 있는 것 같아요"
라고요. 나는 '거리가 아니라 깊이'일 거라고 얼른 정정 해 주었지요.
"아, 깊이!"
그가 낮게 탄성을 질렀어요. 그날 그는 35만 원짜리 보철 공사를 20만 원이나 깎아주었지요. 그 정도도 충분하다고 손사래를 치면서.

시간은 그냥 흐르는 게 아닌가 봐요. 강산이 두 번쯤 바뀌는 동안 드문드문이라도 만남을 이어온 사람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소통의 욕구 같은 것이 싹이 트고 자라기도 하는 것 같아요. 손과 이가 아닌 환자와 의사가 아닌, 남자와 여자로는 아니라도 최소한 인간과 인간으로 마주 대하고 싶은, 그런 관계의 욕구 같은 거 말이지요. 물론 그가 진료 중에 다른 환자들과 비슷한 사담을 나누는 것을 본 적은 없어요. 늘 몇 명의 환자들이 옆 의자에 대기하고 있고, 진료실 바깥에도 미어지게 앉아 있는 사람들 때문에 일손을 멈추고 쌍방대화를 나누는 건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내 의자 옆에 앉자마자 그는 매번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그의 손이 움직이고 있는 동안 내 입술이 자유롭지 않은 까닭에 제대로 응수를 하기 전에 금세 또 봉쇄되고 말지요.

어쩌면 그에게는 대답까지는 바라지 않은 채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들어줄 상대가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어요. 마스크를 쓴 채 자분자분 이야기하는 남자와 흉측하게 입을 벌린 채 바보처럼 듣기만 하는 여자. 그림이 그려지나요? 그러고 보니 이 진료용 의자는 치과치료용이라기 보다 심리치료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가 들으면 좀 언짢겠지만. 어쨌건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이란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이거나 좌우로 흔드는 의사 표시뿐이지요. 그런데 그 간단한 몸짓만으로도 소통에 별 무리가 없다는 것, 놀랍지 않나요?

이순의 나이에 고비사막을 횡단한 라인홀트 메스너는 고비사막에서 만난 유목민들과 대화가 안 통해서 고생한 적은 없다고 해요. 오히려 사막 밖의 세상에서 소통에 더 문제가 많았다고요. 사막에서는 욕구가 단순해지므로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하지만 때때로 고등동물의 신호체계인 언어가 오히려 의사소통을 훼방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말 때문에 빚어지는 오해와 갈등이 싸움으로 번지는 일도 다반사고 보면 차라리 수화를 사용하는 편이 전쟁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뇌가 없고 생식기만 있는 하등생물이 사랑이라는 복잡한 감정회로를 가진 인간보다 종족번식에 더 성공적이듯이.... 들판에서 두 마리의 짐승이 만났을 때 무인도에서 여자와 남자가 만났을 때 말이 통하지 않은 이방인끼리 사막 한가운데서 맞닥뜨렸을 때, 최후의 선택은 두 가지밖에 없을 것 같아요. 도리도리냐 끄덕끄덕이냐 예스냐 노냐. 수용이냐 거부냐.... 그것이 결국 생명체와 생명체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지막 질문과 대답 아닐까요? 의자 앞에 장착된 모니터로 엑스레이 사진을 들여다보던 그가 위아래 어금니를 흔들어보네요. 아파요? 도리도리. 괜찮아요? 끄덕끄덕.

작은 아이가 공부하러 떠나기 전 치과점검을 받으러 보낸 적이 있어요. 엑스레이를 찍고 신경치료에 진통제를 처방하고 스케일링까지 해준 그는 진료비를 받는 대신 한동안 그림자도 안 비친 내 잇몸 걱정을 하였다지요. 공연히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아니 연전에 그가 개보수를 너무 잘 해준 덕분에 스케일링 이외엔 치과에 갈 일이 없었거든요.
"그 선생님 최고야. 몇 년 만에 갔는데도 단박에 알아보시더라고. 치료비도 안 받았어."
돈을 받지 않았다는 게 아이에겐 특히 감동적인 것 같았어요. 그렇지만 딸아,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란다. 논어 맹자 성경 코란을 다 합친 결론이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이라지 않더냐.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인데다 때마침 추석 무렵이어서 선물세트 한 상자를 사 들고 병원을 찾아갔어요. 진료 시간이 마칠 때쯤이어서 원장실에 앉아 간호사가 날라다 준 인스턴트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었지요.
"보고 싶었어요."
몇 년 만에 맞닥뜨린 '고객'에게 던지는 난감한 인사! 특별한 억양도 없이, 씹던 껌을 뱉어내듯 무심히 발성하는 그를 보면서도 나는 거의 놀라지 않았어요. 나에게도 얼마만큼 '내공' 이 쌓였던 거지요. 정직하게 말하면 언젠가 잠깐, 아주 잠깐, 헛된 로맨스를 꿈꾸어보지 않은 건 아니에요. 충치에 덧씌운 보철물이 닳아 대대적인 굴착공사와 토목공사 같은 보수작업이 진행되던 해 일주일에 두세 번, 삼십 센티미터 간격으로 얼굴을 마주 대해야 했을 때, 그래요 이층 창가에 황금빛 은행잎들이 나비처럼 사뿐히 내려앉던 가을이었어요. 병원 유리문에 '세미나 관계로 오늘 휴진합니다'라고 프린트된 종이를 찰싹 붙여놓고 매너 좋고 다감한 의사 선생과 서해안 어디로 바람같이 달려가 싱싱한 대하구이에 짜릿한 낮술 한잔! 그런 세미나 아닌 '재미나'를..... 진료실 의자에 눈 감고 누워 잠시 그렇게 발칙한 상상여행을 떠나보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그건, 어림없는 일이지요. 그나 나나, 정해진 쳇바퀴를 섣불리 벗지 못하는 '범생이'들인데다 처녀 총각이 아닌, 남자와 여자가 아닌, 환자와 의사로서, 그것도 동등하게 마주보는 게 아닌 올려보고 굽어보며 만나야 하는 관계에서, 그런데다 자신이 특히 콤플렉스를 느끼는 신체의 특정부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야 하는 관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설사 그가 어떤 특별한 느낌을 내게 갖고 있다 하여도 보철물이 어지러운 여자의 입속을 들여다보며 키스 따위를 상상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키스라니. 아, 진도가 너무 나갔나요? 아무려나, 플라톤은 '키스는 영혼이 육체를 떠나가는 순간의 경험'이라고 말했다지만 나는 반대로 영혼이 육신에 깃드는 순간이 키스일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오늘 유독 손님이 많아서 끝날 때쯤 거의 그로기 상태였는데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어요."
그의 말은 일견 진심인 것 같았지만 특별한 의도는 없어 보였어요. 구태여 메시지를 넣으려 하지 않고 눈앞에 있는 정경을 그대로 묘사하는 문장처럼요. 오래 못 만난 동창생을 우연히 맞닥뜨렸을 때의 들뜸이나 흥분 같은, 뭐 그런 기분이었겠지요. 식은 커피를 앞에 두고 이런 저런 이야기가 중구난방 오갔어요. 아이들 때문에 속상했던 이야기와 골프 핸디가 얼마라는 이야기와 여자들의 갱년기 증상에 대하여.... 갱년기 아내에게 무심했다간 말년에 눈칫밥을 먹을 수도 있으니 각별하게 신경 쓰라는 충고 아닌 충고도 했던 것 같아요.
"예쁘네요"라고, 이야기 도중 그가 불쑥 말했어요.
나는 조금 멋쩍게 웃었고 맞은편 등의자에 기대앉은 그는 내 쪽으로 팔을 내밀었지요.
"지금 그렇게 앉아 계시는 모습, 이뻐요."
꾸미지도 거리끼지도 않고, 순간의 느낌을 여과 없이 투척하는 그의 직구 스타일이 당혹스럽긴 했지만 나도 쿨하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계속했지요. 떨림도 울림도 없는 건어물들! 젊었을 때도 들어보지 못한 휘황한 찬사를 식은 커피 들이켜듯 홀짝 들이켜 버리다니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낯가죽에도 가슴팍에도 자기방어의 방패 같은 굳은살이 박혀간다는 뜻인가봐요. 병원 입구까지 배웅 나온 그와 짧게 악수를 나누었던가? 그러고 또 몇 달이 흘렀지요. 며칠 전 덧씌운 어금니가 탈이 나지 않았다면 몇 년이 그냥 흘러버렸을지 몰라요.
"아무래도 한쪽을 잘라내야 할 것 같아요. 신경치료하고 가운데에 심을 박아야 새로 씌워도 힘을 받을 수 있거든요."
'아프겠네요'라는 말 대신 '시끄럽겠네요'라고, 나는 엉뚱하게 대꾸했어요.
"아니 하나도 안 시끄러워요. 음악소리 같아요."
나는 또 푸핫,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어요. 전에 그가 신경을 살짝 건드려 나도 모르게 양미간이 접혔을 때, '아, 아팠어요? 미안해요'라고, 당황해 하던 생각이 나서요. 다음 순간 얼른 양치 컵을 집었지요. 암반을 뚫는 굉음과 화약 냄새 같은 것들 속에서 돋보기를 쓰고 갱도를 보고 있는, 초로의 남자에게 미안해서요.

드릴을 쥔 그의 손가락이 내 입술 사이를 가만히 비집네요. 매번 느끼는 거지만 덩치 큰 남자의 나이 든 손이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그의 손길은 조심스럽고 섬세해요. 하긴 그렇게 섬세하지 않고서야 사과 한 알 크기 안 되는 좁은 막장을 평생의 일터로 삼을 수는 없겠지요. 그러고 보니 치과의사란 순전히 남의 입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네요. 푸훕!

눈을 감고 입술을 열고 포스트모던적인 음악소리를 들으며 나는 생각해요. 그래, 이렇게 건어물처럼 메말라가는 것, 마른 사과처럼 가을 억새처럼 물기 없이 사위어 가는 것. 이것이 나이 들어간다는 거구나. 첫눈이 와도 설레지 않고 해가 바뀌어도 가슴 뛰지 않는 것 먹다 남은 빵처럼 굳어지고 나무토막처럼 딱딱해져서 목불이 되고 석상이 되고.... 그렇게 거룩하게 늙어야 하는 거구나. 비에도, 바람에도, 서푼어치의 감상에도, 우연을 가장한 필연에도 현혹되지 않고 흔들림 없이 살아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인간상일지 몰라,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볼 때 인간은 줄기차게 종교와 윤리라는 이름으로 감정을 죽이는 데 몰두해 왔으니까. 바람 한 점 스미지 않게 앞섶 꽉 여미고 눈 가린 말처럼 내달려야만 가까스로 완주해내는 게 생이라는 경주일지도 몰라.

그런데 이상해요. 가만히 눈을 감고 돌이켜보니 여태 남아 있는 기억들은 거의가 흔들리고 서성거리던 시간뿐인 것 같아요. 스치는 바람 한 자락에도 미란성 위염 같은 찰과상을 입고, 한사코 한 방향으로 내달리는 마음을 쥐어 잡느라 대낮의 거리를 떠돌고 헤매던... 살아 있다는 건 그런 것 아닐까요? 날렵하게 허공을 후려치며 곤두박질치는 등 푸른 물고기를 다시 꿈꾸지 못하고 해풍에 꾸덕꾸덕 말라가야만 하는 이런 삶은 이미 여생일 뿐 아닐까요? 축제가 끝나버린 마당에 앉아 헤푼 농담이나 주절거리며 사는 삶은 본문이 아닌 부록일 뿐이지요. 본문보다 부록이 낫다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에요. 창 밖 나뭇가지 아래로 흰 새들이 다시 뭉텅, 뭉텅 내려앉고 있어요. 움푹 팬 어금니 한 쪽을 레진으로 묵묵히 마루리 하던 그가 무표정하게 또 방백하네요.
"치과의사가 제일 좋아하는 여자가 누군지 아세요? 예쁜 여자? 노, 똑똑한 여자? 노, 정답은.... 입 큰 여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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