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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저녁에 / 정아경
2007년 에세이스트 14호 신인상 수상작
아직도 눈에 선하다. 녹음이 우거진 벚나무 숲이, 연하고 보드라운 새순들의 느낌이 손끝에 남아 촉각을 자극한다. 기억만으로도 감각을 느낄 수 있음이 신기할 뿐이다. 기억이란 참으로 묘하다. ‘추억’이란 단어와 어우러져 잊고 싶지 않은 느낌을 그대로 저장해둔다. 가끔씩 꺼내면 그 순간을 고스란히 전달해 준다. 첫 키스의 느낌도, 첫 아이 낳을 때의 느낌도 항상 그대로다. 기억이라는 신비한 뇌세포는 어디에 이 많은 추억을 저장해 두었을까. 삶이 버거울 때 추억은 새로운 설레임이 되어 전율을 느끼게 한다. 기억은 인간이 누리는 최고의 특권은 아닐까.
나의 시댁은 예천이다. 어머님께서 연로하셔서 농사를 지을 수 없어 논을 묵혀야 했다. 이태가 지나니 잡초가 우거져 야산처럼 변했다. 시골에서 흙 내음 맡고 자란 탓인가. 땅에 애착이 많은 나는 그 논을 묵히기 아까웠다. 마침 고향친구가 노는 땅에 벚나무를 심고 있었다. 선뜻 투자를 자청하며 묘목을 지원하였다. 나머지는 남편 몫이었다. 천 그루의 벚나무를 심어놓고는 주말마다 시골에 갔다. 뽑아도 뽑아도 나는 잡초와 묘목 잡아주기, 약치기 등 남편은 농군의 모습을 닮아갔다. 꽤 많은 비가 오면 자다가도 일어나 시골에 다녀왔다. 대구와 예천간의 짧지 않은 거리를 불이 나도록 다녔다. 그렇게 이년을 정성들여 놓으니, 올해는 제법 우거진 폼이 숲의 모양새를 하고 이었다. 튼실한 나무를 잡고,
“이 년 동안 4, 5월에 여기에 미쳤었지.”
하며 뿌듯해 하는 남편에게
“당신은 오윌이면 어디에 미치나 보네.”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취중진심이라더니, 때론 흘러버리듯 내뱉는 말에도 진심이 담겨있나 보다. 내가 아는 이 남자의 오월은 열정의 오월이다. 자신의 전부를 내던지는 희생의 오월이다. 목이 터져라 외치는 절규의 오월이다. 87년 오월에는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치며 거리를 누볐고, 89년 오월에는 감방 간 친구 옥바라지와 그 빈자리 메우느라 학생회에서 살다시피했다. 편안한 잠자리는 친구에 대한 배신인 듯 학생회 쇼파에서 선잠을 고집했던 사람, 의리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겼던 사람. 그 열정에 마비된 듯 그 곁에서 함께 타올랐던 내 모습이 파릇파릇 되살아난다.
현실은 냉정했다. 순수나 열정은 공허한 이상에 불과했다. 졸업 후, 모두들 자신의 자리를 찾아 떠났다. ‘부모가 자식 반 팔자’라더니 빨간 딱지를 달고도 제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가야할 곳을 잃은 나그네마냥 뒤늦게 자신의 상황을 파악한 그는 이를 악물고 현실에 적응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제도권속의 안락한 일자리를 박찬 그에게는 모든 것이 넘어야 할 벽이었다. 쌩쌩 달려만 가는 이들 뒤에서 장애물 경기하듯 고난 하나를 넘으면 또 하나가 나오고, 그 하나를 넘으면 또 하나가 기다렸다. 사랑에 바진 나는 그런 그에게 힘이 되어 주리라 말없이 다짐하곤 했다.
5.18 묘역에 내노라는 정치권 인사들이 줄지어 참배를 했다.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왜곡되었던 1980년 5․18광주는 진상규명되어 명예를 회복했다. 5․18기념행사도 행정자치부가 주관한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역사는 흐르고 진실은 밝혀지는 법이다. 5․18민주화 진상규명을 위해 팔이 빠지도록 대자보 쓰고, 메가폰 들고 교문 앞에서 외치던 그는, 작은 음식점에서 손님바리기 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삶의 수레바퀴를 돌리느라 5․18임을 다 된 저녁에야 알았다 한다. 씁쓸하게 웃는 그 모습이 아프다. 너무 아프다. 대가를 바라고 바친 열정이 아니지만, 밀려난 듯한 그의 현실이 안쓰럽다. 가여운 이 남자를 꼭 안아준다. 좋다. 질리지 않는 이 남자의 품이. 껴안고 있으면 나무가 되는 이 남자는 아직도 내 속에서 자라고 있다. 벚나무 보다 더 울창한 숲이 되고 있다.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 착하게 살아라. 이런 식의 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이분법적 사고를 조장하여 총체적 무비판의 사회로 몰아갈 위험이 있다.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선과 악은 서로 다른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다. 비판은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말해준다. 옳지 않은 것을 말하고, 바꾸려고 노력하는 이들로 인해 사회는 발전해 간다. 착하게 산다고 올바르게 산다고 해서 반드시 복을 받는 것은 아니다. 신령님이 나타나 금도끼, 은도끼를 주지는 않는다. 하나 밖에 없는 나무도끼를 잃었다면, 굶든지 다시 사든지 해야 한다. 준비성 있는 나무꾼이라면 모아놓은 돈으로 쇠도끼를 사겠지.
어느 기자가 5․18 주범인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태를 종일 살폈다 한다. 자신을 향한 눈들을 의식해서일까. 그는 종일 집안에서 칩거했다 한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권력의 최고 자리까지 누린 그가 몇 십 평 공간에 갇힌 신세다. 양심이란 창살 없는 감옥이 그의 행동을 제어했으리라.
“만약에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남편은 잠깐의 주저함도 없이 같은 길을 걷겠노라 한다. 스스로의 양심에 떳떳한 삶을 선택하겠단다. 하늘 아래 당당할 수 있는 그의 삶의 철학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어딘가에 미쳐있을 때 자신은 자신을 모른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는다.
이념을 위해 미쳐있던 이십대의 이 남자도,
꿈을 위해 미쳐있던 삼십대의 이 남자도,
재기(再起)를 위해 미쳐있는 사십대의 이 남자도 아름답다.
오월이면 어딘가에 미쳐있는 남자, 내가 사랑하는 남자다.
아, 그렇게 세월이 흘러
오십에는 자신감에 찬 약간은 거만한 이 남자를 만나고 싶다.
육십에는 전원에 푹 빠진 넉넉한 웃음을 자아내는 이 남자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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