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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


집사람이 그저 밥이나 축내면서 빈둥거리는 내가 답답하였던지 처가 형제들에게 자리 짜는 재료를 얻어다가 나에게 자리라도 짜라고 성화를 대는 한편 이웃 늙은이에게 자리 짜는 법을 가르쳐 달라 하였다. 내가 하는 수 없이 마음을 누르고 해보니, 처음에는 손에 설고 마음에 붙지 않아 몹시 어렵고 더딘 탓에 하루종일 한 치를 짰다.

이윽고 날이 오래되어 조금 익숙해지자 손놀림이 절로 빨라졌다. 짜는 법이 마음에 완전히 무르녹자 종종 옆 사람과 말을 걸면서도 씨줄과 날줄을 짜는 것이 모두 순서대로 척척 맞았다. 이에 고단함을 잊고 일에 빠져 식사와 용변 및 접객할 때가 아니면 놓지 않았다. 헤아려보건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자는 됨직하니, 잘 짜는 사람에 견주면 여전히 무딘 편이지만 나로서는 크게 나아진 셈이다.

손재주 없고 일에 서툴기로 천하에 나만한 사람이 없거늘 배운 지 한 달 만에 이만큼이나 되었다. 이 기술이 천하의 하찮은 것인 줄은 알겠거니와 내가 하기에는 정말로 맞춤이다. 종신토록 이 일을 한다 하더라도 사양하지 않을 터이니, 분수에 맞기 때문이다.

자리 짜기를 해보니 나에게 이로운 것이 다섯이다. 밥만 축내지 않는 것이 하나요, 쓸데없는 외출을 줄이는 것이 둘이요, 한여름에 더위를 잊고 대낮에 곤히 자지 않는 것이 셋이요, 시름을 어느새 잊고 입을 절로 다무는 것이 넷이다. 만들고 나서 곱게 짠 것으론 늙으신 어머니를 편안하게 해드리고 거칠게 짠 것으론 나와 처자식이 깔며 어린 계집종들도 맨바닥에서 자는 것을 면하게 해 주는 데다, 남은 것으론 나처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이 다섯이다.

 

원문


家人悶余之徒食而無所用心, 乞席材於其兄弟家, 強要之, 且請隣翁授其法. 余不獲已抑而爲之, 始也手澁而心不入, 甚艱以遲, 終日而得寸焉. 旣日久稍熟, 措手自便捷, 心與法涵, 往往顧語傍人, 而經緯錯綜, 皆順其勢而不差. 於是乎忘其苦而耽好之, 非飮食便旋及尊客來則不輟焉. 計自朝至暮, 可得尺, 自能者視之, 猶鈍矣, 而在余可謂大進矣. 天下之短於才而拙於謀者莫如余, 學之旬月能至於是, 是技也, 爲天下之賤也可知也, 余業之固其宜哉. 雖以是終吾身亦不辭焉, 分所當也. 爲之有益於余者五: 不徒食一也; 簡閒出入二也; 盛暑忘蒸汗, 當晝不困睡三也; 心不一於憂愁, 言不暇於支蔓四也; 旣成而精者, 將以安老母, 粗者將以藉吾身與妻兒而使小婢輩亦免於寢土, 有餘將以分人之如余窮者五也.

- 김낙행(金樂行, 1708~1766), 『구사당집(九思堂集)』권8, 「직석설(織席說)」

 

구사당 당호(제산종택)

 

해설 -  이규필(경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사랑이 있든지 없든지 방 하나를 따로 차지하고 들어앉아서 폐포파립(弊袍破笠)이나마 의관을 정제하고, 대개는 꿇어앉아서 사서오경(四書五經)을 비롯한 수많은 유교 전적을 얼음에 박 밀듯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내리외는 것이 날마다 그의 과업이다. 이런 친구들은 집안 살림살이와는 아랑곳없다. 가다가 굴뚝에 연기를 내는 것도, 안으로서 그 부인이 전당을 잡히든지 빚을 내든지 이웃에서 꾸어 오든지 하여 겨우 연명이나 하는 것이다.

이희승 선생의 ‘딸깍발이’ 중 한 대목이다. 지난 시대 선비들에게 생계와 일에 서툴다는 것은 은근한 자랑이고 칭찬이었다. 겉으로야 재주 없고 물정 모르는 오활한 사람이라고 겸손을 떨며 손사래를 치지만 속으로는 시속의 이끗을 멀리하는 문사로의 삶에 자부심이 자못 높았다. 자신의 가난한 살림을 안연의 단표(簞瓢)에 슬쩍 투사하며 안빈낙도를 자처하였다. 냉담가계(冷淡家計)란 경전 공부를 뜻하는 말이지만, 경전 공부에 잠심하다가 가계가 참으로 냉담해졌으니 영 틀린 말도 아니다.

단지에 쌀이 떨어져 굶어도 땔나무가 없어 오들오들 떨어도 국화를 읊고 대나무를 노래할 뿐 선비는 일을 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선각적 지식인으로 알려진 최한기(崔漢綺) 역시 손의 쓰임에 대해 논하며 백성을 인도하는 사대부의 손은 ‘귀한 자의 손의 쓰임’이라 하고, 기계를 제작하고 노동을 하는 손은 ‘천한 자의 손의 쓰임’이라고 하였다. 시행에 귀천이 없다고 단서를 달기는 하였으나, 의식의 심연에 ‘노동은 천한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안동 내앞에서 태어나 밀암(密庵) 이재(李栽)의 수제자로서 퇴계학맥의 중심에 서 있었던 구사당 김낙행은 전형적인 영남 선비였다. 평생토록 벼슬에 나가지 않고 사랑에 단정히 앉아 얼음에 박 밀듯이 경전을 내리읽는 것이 그의 소업이었다. 그런 그에게 빈둥거리지 말고 자리라도 짜보라고 부인이 성화를 댔다. 하는 수 없이 자리를 짜던 구사당은 짧은 시간이지만 삶에서 참으로 색다른 경험을 했다. 노동의 즐거움과 보람을 몸으로 느낀 것이다.

할 일 없이 빈둥거린다는 무소용심(無所用心)은 『논어』에 나오는 표현으로 공자가 일찍이 장기나 바둑보다 못한 한심한 짓이라 핀잔을 준 적이 있다. 그런데 구사당은 자신의 독서행위를 그저 밥이나 축내며 빈둥거리는 행위로 표현하는 한편 직접 손을 놀려 자리를 짠 일을 두고 비로소 밥값을 했노라고 자랑하고 있다. 난생처음으로 가계에 무언가 보탬을 주었다는 뿌듯함에 의식하지 못한 사이 사유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고단함을 잊고 일에 빠져 식사나 손님을 맞을 때가 아니면 놓지 않았다고 고백하였으니, 발분망식(發憤忘食)에야 비길 수 없지만 굉장한 즐거움을 경험한 것만은 틀림없다. 그리고 즐거움에 들떠 고상한 선비의 체면 따윈 잊어버리고 손을 놀려 일하는 보람을 글로 써서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그중 제일 길게 서술된 것은 다섯 번째인데, 평생 처음으로 밥값을 해본 자가 자신의 손으로 어머니와 처자식에게 기쁨을 선사한 것에 대한 만족감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구사당이 자신의 학문 행위를 진정으로 무가치한 것이라 여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성화에 못 이겨 시작한 자리 짜기를 계기로 우연히 노동의 즐거움과 보람을 깨달았다고 보는 편이 옳겠다. 그러나 이러한 작은 사유의 전환이 새로운 변화를 만든다. 세상은 또 이렇게 한 걸음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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