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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바닥의 시간 / 문혜영

부흐고비 2020. 12. 1. 10:13

앞으로 나아가다가 길이 막히거나 삶이 멈춰있다고 생각될 때면, 아들은 자진하여 더 힘든 자리를 찾아 떠나곤 했다. 안일함 속에 길들여지면 방향감각을 잃고, 삶이 무력해진다는 것이었다. 그 첫 번째 시도가 과학 고등학교였다. 집을 떠나 기숙사생활을 해야만 하는 삶을 기꺼이 선택한 것이다.

대학을 진학하고 난 뒤엔 함께 살 수 있어 좋았지만, 실험실에서 자정을 넘긴 시간까지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런 아들 때문에 학교 가까운 봉천동으로 이사 왔는데, 아들은 또 다시 훌쩍 유성으로 내려가 기숙사와 연구실만 왔다 갔다 하면서 박사과정을 이수했다.

그리고 결혼과 동시에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연구를 해보겠다며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다. 서울에서 의학공부를 하느라고 신랑을 따라가지 못한 며느리는 방학하는 다음 날로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간다. 신혼의 달콤한 시간을 마다하고, 바다건너 외로운 땅에서 홀로 연구실에 파묻혀 지내는 아들을 생각하면, 사막으로 내보낸 것만 같아 깔깔한 모래바람이 가슴에서 인다.

내 생활공간은 실험실뿐이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오로지 연구실에서 초파리, 효모 등만을 상대하면서 어느덧 나의 20대가 흘러가 버렸다.

샌프란시스코로 떠나기 전인 2006년, 모 경제신문 칼럼에 실렸던 아들의 글 첫머리다. 학회 참석을 제외하곤 친구들과 어울려 이곳저곳 다녀본 기억이 별로 없고, 문화생활도 접할 기회가 적어서 노래방에 가도 10년 정도 지난 노래밖에는 부를 줄 모르는 멋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아들.

아들의 하루는 매일 기숙사에서 몇 발짝 떨어진 연구실로 출근해 초파리를 돌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수백 종류의 돌연변이 또는 형질전환 초파리들을 보살피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고 아들은 토로했다. 날아다니는 초파리만 보아도 암수를 구별할 수 있을 만큼 초파리와 익숙해졌다는 아들, 이산화탄소를 이용해서 마취시킨 후,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초파리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들도 자신을 보고 있는 듯 착각이 되어 가끔 말을 걸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연구 분야는 초파리를 이용해 사람의 신경계 질환의 발생 원인을 밝히는 일이다. 애초부터 생물학을 선택한 이유가 질병 연구로 고통 받는 사람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자함이기 때문에, 암이나 면역 관련 연구도 아들의 관심 분야다.

이런 연구를 위해서는, 초파리의 뇌를 분리해 내거나, 초파리 알 껍질을 예리한 도구로 찢어내는 등의 일을 해야만 한다. 숨죽이며 집중해서 해부를 하다가 잠시만 손이 떨려도 그대로 샘플을 못 쓰게 되는 일이 반복된다고 했다. 몇 시간 동안 진땀을 흘리며 불과 몇 개의 샘플을 손에 얻고 나면 몸이 마구 경직되고 마음이 답답해져서 건물 밖으로 잠시 나가서 소리를 지르고 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질병 치료에 유용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비정상적인 초파리를 만들고 그들의 삶을 지켜봐야 하며, 그들을 또 정상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을 한다고 했다. 그런 일을 하다 보니, 실험실동료들 중엔 졸업논문을 쓸 때, 함께 했던 초파리들에게 괴롭혀서 많이 미안하고 또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는 감사의 글을 남기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자신의 얘기나 바람에는 관심도 없고, 전혀 들어주지도 않는 상대를 늘 지켜봐야만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참 지독한 짝사랑을 하고 있구나.’ 생각된다는 아들. 너무나 작은 생명체만을 바라보는 직업을 갖게 되다 보니 내 안의 그릇도 함께 작아지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생기지만,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길을 걸을 수 있어 감사하다는 말로 글을 맺었다.

일이 고될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여유가 별로 없고, 사람들과의 교류도 많지 않고, 공유할 수 있는 것도 적어 때론 쓸쓸하게 느껴진다고 솔직하게 심정을 털어놓았던 아들. 그렇게 초파리에 갇혀 쓸쓸한 20대를 보내더니, 더 넓은 세상이라는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역시 초파리에 갇혀 적막한 30대를 맞고 있다. 더욱 외롭고 쓸쓸한 공간과 시간 속에 스스로를 묶어둔 채.

샌프란시스코 생활 2년이 넘어가면서 아들은 힘들어 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원해서 떠난 삶이긴 했지만, 삭막한 외국환경에서 매일 반복되는 실험에 지쳐가는 느낌이었다. 거기서도 초파리를 향한 지독한 짝사랑은 계속되고 있어서 때때로 아들은 깊은 슬럼프에 빠져 들곤 했다. 아무리 집중해서 들여다보고 소통을 하려고 해도 초파리는 해줄 말이 없는 것이다. 사실 초파리 그 녀석들 스스로도 뭘 안단 말인가. 지루한 기다림이 있을 뿐이다. 신이 숨겨놓은 생명의 지표를 찾아내기 까지는 시행착오를 수없이 거쳐야 한다.

안부를 물으면 잘 지낸다고 하면서도, 한숨처럼 흘러나오는 말이 있다. ‘그냥, 좀 답답해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난 우주에 검은 장막이 드리운 느낌이곤 했다. 같은 연구실엔 저마다 능력 있는 연구박사들이 80여명이라지만, 그들은 또 각자 자신의 연구과제 앞에서 아들처럼 애를 태우고 있을 것이다.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이 혼자 살아남아야 하니, 사막이나 망망대해와 다를 바 없다.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들의 홈피에 들려 사랑한다는 말 몇 마디 남기는 것이 고작이다. 내 삶에서 이젠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고 느껴질 때, 그저 캄캄해서 숨을 쉴 수가 없을 때, 나를 일으켜 줄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이었음을 기억하면서.

거의 2년을 준비하며 오래 고심했던 연구가 뜻대로 되지 않아서 몹시 침울해 하던 날, 나는 박노해의 ‘바닥의 시간’을 아들 홈피에 남겨 놓았다.

사막의 유목민인 투아레그 사람들은
막막한 사막을 낙타를 타고 가다가
방향감각을 잃는 현기증이 일어나면
곧바로 낙타에서 내려 모랫바닥에 드러누워
자기 겉옷을 이불처럼 얼굴까지 뒤집어쓴다.

멈춤
깊은 잠
어둠
침묵

그 바닥의 시간이 그로 하여금
다시 중심을 잡아 일어서게 한다.
                                           - 바닥의 시간 - 전문

사막에서 태어나 유목생활로 온 삶을 살아가는 사하라사막의 투아레그 사람들. 그들은 사막에서 길을 잃거나 우물을 찾고자 할 때, 별과 은하수로 방향을 잡고 그들만이 아는 대지의 아주 작은 맥박에도 극도의 주의를 기울여, 어떤 신호의 안내를 받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멈춤, 깊은 잠, 어둠, 침묵은 생명의 신호를 받기 위한 그들의 생존법이다.

투아레그 부족에게는 ‘서두르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라는 말도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관조할 시간도 없이 소멸을 향해서 내달리기만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란다. 인내심을 통해 시간에 머무르는 법을 아는 사람들. 스쳐 지나는 삶만으로도 매우 풍요로운 시간을 만들 수 있음을 아는 투아레그 사람들.

아들에게 주절주절 덧붙였다. 지금의 시간을 바닥이라고 생각한다면, 벗어나려고 너무 애쓰지만 말고 잠시 그대로 놓아두라고…. 때론,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시간이 흘러주기를 기다리는 것도 필요하다고…. 그러노라면 아무리 애써도 찾아지지 않던 길이 보일 수도 있을 거라고…. 그리고 분명히, 이 시간을 아름답게 회상하며 그리워하는 훗날이 찾아올 것이라고….

암 투병으로 바닥의 시간을 경험해보니, 그 절망의 시간이 생명의 신호를 받을 수 있는 축복의 시간으로 찾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몸도 낮추고, 마음도 낮추고, ‘나’의 전부를 한없이 낮춘 상태에서 침잠하듯 깊은 어둠속에 침묵하고 있어보니, 바닥에 누워있던 생각도 일어나고 마음도 일어나고, 몸도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

우리를 인도하는 생명의 신호는 높이 솟았을 때보다 오히려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바닥에서 더 잘 들린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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