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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손안의 보배 / 강천

부흐고비 2021. 1. 25. 08:56


읍내를 관통하는 강변 산책로를 걸었다. 강의 둔치에다 인공적으로 만든 길이다 보니, 걷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나무 한 그루 없는 휑한 길이다. 나름 신경을 써서 여러 가지 식물들을 심어 놓기는 했지만, 철 따라 일부러 심는 꽃들이 어디 잡초만 하겠는가. 가시상치며 달맞이꽃, 뚱딴지같이 토종 아닌 귀화종이 더 무성하게 자라 키를 넘기고 있다.

외국에서 귀화해 온 동식물들이 기존의 토착 생태계에 교란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외래종이 들어와서 살지만, 그중에서도 피해가 심각한 종류들은 환경부에서 ‘생태계교란종’으로 지정하여 특별히 관리하는 실정이다. 비교적 근래에 들어온 생물이라 천적도 마땅찮고, 약삭빠르게 잘 적응해 번성하니 그 퇴치에 들어가는 비용 또한 만만찮다고 한다. 게다가 한번 정착한 동식물을 인위적으로 멸절시킬 방법도 없으니 더욱 곤란한 일이다.

굶주림을 면해 보겠다고 모셔온 배스가 토종 물고기들을 거의 멸종상태로까지 몰고 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모피로 소득을 올려 보겠다고 들여온 뉴트리아는 수초를 깡그리 먹어치우고, 굴을 파서 제방을 위태롭게 한다. 가시박이 번성한 자리에는 토종 식물들이 죄다 말라비틀어지고, 돼지풀이 날린 꽃가루 때문에 못 살겠노라고 하소연한다.

우리만 피해자가 아니다. 세계가 같은 처지에 직면해 있다. 우리나라에서 모래 유실 방지용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순비기나무는 바다거북의 번식을 방해하고. 그곳 식물의 발아를 막는 화학물질을 뿜어내는 말썽꾸러기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가물치도 그렇고, 일본에서 간 것으로 알려진 칡 역시 현지에서는 그 폐해에 골머리를 앓는 중이라고 한다.

신토불이라는 말이 그냥 나왔겠는가. 토종이 달리 토종이겠는가. 누천년 이 땅과 환경에 적응해오면서 생태의 균형을 맞추어 왔다. 그 균형추가 기울어지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우선 급한 불을 끄겠다고 고민 없이 남의 손을 빌려다 쓴 안일함이 만들어낸 인재이고 참사다. 내 손안의 쓸모 있는 본토박이보다, 남의 손에 들린 떡이 더 맛있고 좋아 보인 탓이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시작할 때’란 말이 있다, 지금부터라도 내 손에 쥔 보배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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