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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지저깨비 / 조현태

부흐고비 2021. 1. 27. 14:01

2009년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당선

웅장한 조각품 앞에서 입이 딱 벌어졌다. 간단하게 구경만 하기는 너무 미안한 작품들이었다. 책 속에서 흑백사진으로 보던 얼굴을 화강석 조각품으로 마주하니 더 그러했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작품 중에 훌륭한 인물이 대부분이었다. 큰바위얼굴 조각공원은 국내외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얼굴전시장이었다. 그토록 흠잡을 데 없는 인물로 남기 위해 얼마나 자신을 다듬었으며, 추잡한 것들을 얼마나 많이 버렸을까 싶었다.

내게는 석수장이 친구가 있다. 그 엄청난 작품들을 둘러보면서 친구가 조각하던 현장에서 보았던 일이 떠올랐다. 채석장에서 나온 원석이 작게는 몇 톤, 크게는 수백 톤이나 되는 것도 있다고 했다. 원석에다 쪼개고 싶은 부분에 먹줄을 놓고 정으로 작은 홈을 여러 군데 팠다. 그 홈에다 ‘야’라고 이름하는 쇳조각을 하나씩 끼워놓고 큰 해머로 차례차례 번갈아가면서 두들겼다. 신기하게도 집채만큼 큰 돌이 맥없이 쩍 갈라졌다.

조각품을 다듬기에 알맞은 크기로 쪼개졌을 때 모서리와 면을 뜯어내고, 파내고 하여 전체적인 윤곽을 만들어갔다. 그리고 더 세밀하게 다듬고, 갈고, 광택도 내고 해서 거의 실물에 가까운 형상을 갖추어갔다.

석수장이가 돌로 조각하는 과정을 보면 쪼개고, 뜯어내고, 파내고, 갈고, 광내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바꿔 말하면 어떤 형태로든 뜯겨 나가기만 했지 덧대거나 붙이는 일은 없었다. 정과 망치로 모양을 잡아가는 작업은 대단히 많은 날 동안 계속되었다. 서두르지도 않았고, 실수하여 재 작업하는 경우도 없었다. 어느 부분을 어떻게 쪼아내고 갈아야 할지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고 행하는 것이 곧 조각하는 과정이었다.

완성된 조각 작품 주변에는 크고 작은 돌 부스러기와 가루가 너저분하게 쌓여 있었다. 이 모든 부스러기들을 일본식 명칭으로 ‘곱바’라고 했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들었으나 이제 다시 생각난 이 외래어가 무슨 뜻인지 알고 싶었다. 비슷한 의미의 우리말을 찾아냈다. 지저깨비. 그것은 조각품을 이루는데 전혀 쓸모없는 부분을 뜯어내 놓은 허섭스레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우리네 인생도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올바른 모습을 갖추어가는 것이 아닐까. 한 삶을 결정지을 분야가 설정되기에는 거대한 꿈으로 획을 긋고 그 선을 따라 생의 갈래를 정할 것이다. 획에서 빗나가지 않게 열과 성을 다하여 꿈의 테두리를 만들고 미리 그려둔 투시도에 맞춰 열심히 인생을 조각할 것이다. 생채기가 나고 헐어진 자국에 크나큰 충격도 받아가며 한사람의 바탕이 마련될 것이다.

삶을 다듬기 위하여 쪼아내고 갈아야 할 인생조각 작업은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쓸모없는 부분을 뜯어내고 후벼 파는 일이다. 게다가 더 아름다운 모습이 되기 위해서 갈고 닦는 훈련은 물론이요, 필요에 따라서 반짝반짝 광택도 내야 한다. 방망이에 맞은 충격이 큰 공을 홈런볼이라 했던가. 이 모든 과정들은 결코 아픔이 없이는 불가능하리라.

나도 아파하며 몹쓸 것을 떼어낸 경험이 있다. 언젠가 나를 찾아온 손님에게 불쑥 화를 낸 적이 있었다. 농기계를 가지고 와서 고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농기계 수리점에 와서 농기계를 고칠 수 있느냐는 질문은 왜 할까 싶었다. 나는 슬며시 화가 났다. 하찮은 기술로 수리하다 망가뜨리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투로 들렸던 것이다. 더 세밀히 말하자면 경운기 같은 소형 기계나 고치는 실력으로는 대형 트랙터나 콤바인 같은 기계를 제대로 정비하지 못하리라는 의구심이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그렇게 기술이 못 미더우면 시내 믿을 만한 전문 정비업체로 갈 일이지 여긴 무어하러 왔느냐는 투로 말했다. 그러자 손님에게 과민반응을 보이며 대드는 태도는 영업에 있을 수 없는 행동이니 당장 고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가만히 되새겨 보았다. 솔직히 고칠 수 있느냐는 질문도 할 수 있고, 내 기술을 믿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은가. 뭐 그리 대단한 기술이라고 목을 곧추세웠는가. 차분하게 생각해보니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잘못했으니 용서해달라고 빌 수밖에 없었다. 또 앞으로 이런 태도는 보이지 않겠노라고 다짐할 수밖에 없었다. 자존심 때문에 화가 났을 때 아팠고, 부끄러우면서 아팠고, 빌면서 또 아팠다. 아파서 버리지 못했다면 조각되지 않은 생에서 오점으로 영원히 남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어쩌면 내가 지니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했던 알량한 자존심을 떨쳐버리도록 손님이 나의 지저깨비에 정을 들이대고 과감한 망치질을 했는지도 모른다.

불편하고 쓸모없는 부분일지라도 스스로는 발견하기가 매우 어렵다. 나쁜 것은 자신에게 붙어 있지만 좋지 않은 것인 줄 모르는 점도 조각품과 견주어 볼 수 있다. 누군가가 판단하여 흉한 점이나 못된 습관을 지적하고 버리기를 강요하면 상처받아 아파하고 속상해하기 일쑤다. 하지만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허접한 모습을 버리지 않고서는 좋은 삶으로 평가받지 못할 것이다.

나쁜 것을 얼마나 깨끗하게 버렸느냐 하는 것은 좋은 것이 얼마나 남았느냐와 같다. 큰바위얼굴 조각공원에 있는 그 많은 인물도 지저깨비를 다 떨쳐버리지 않았는가. 작은 흠집까지도 찾아내어 빠짐없이 버리고 다듬어 올바른 면모를 갖춘 조각품들이 지금 여기저기에서 노려보고 있다. 지저깨비를 잔뜩 붙이고 있는 나를 향해 훌륭한 인물들이 무엇을 버렸는지 깨우쳐 보라는 눈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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