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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봄은 가도 꽃은 남고 / 법정

부흐고비 2021. 3. 9. 09:02

오두막 둘레에는 5월 하순인 요즘 민들레와 철쭉과 듬성듬성 피어난 복사꽃이 볼 만하다. 앞마당 가득 민들레가 노랗게 피고 진다. 혼자서 풀을 매기가 힘에 겨워 그대로 두었더니 천연스런 꽃밭이 된 것이다. 분홍빛 철쭉은 뜰 가에서도 피고 벼랑 끝에서도 핀다. 눈길이 자주 간다. 한 가지 꺾어다 식탁에 꽂았다. 가까이 대하니 참으로 곱다.

내가 이 오두막에 들어와서 심은 3백여 그루의 자작나무와 전나무와 가문비나무는 실하게 자라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그런데 복숭아나무는 고랭지라 꽃을 피워도 그 빛깔에 기운이 달린 것 같다. 올해도 묘목을 사다가 스무 그루를 심었다.

봄날 어디를 지나다가 분홍빛 복사꽃을 보면 공연히 가슴이 설렌다. 이 나이에도. 이런 이야기를 한 친구에게 했더니 자기도 복사꽃을 대하면 마음이 심란해지더라고 했다. ‘심란하다’는 그 표현이 참으로 적절한 것 같다. 마음이 뒤숭숭하다거나 어지럽다는 표현보다 훨씬 함축미가 있다.

이 오두막에 살면서부터 나는 봄을 두 번씩 맞이하는 셈이다. 남쪽에서 매화와 진달래와 산수유와 벚꽃과 복사꽃과 모란을 실컷 보았는데, 초여름에 접어들면서 이곳에서는 봄꽃들이 뒤늦게 문을 연다.

‘봄은 가도 꽃은 남고 春去花猶在’란 옛 글 그대로다.

오늘 아침 뜰에 가득 피어난 민들레를 보면서 문득 아, 나는 부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을 책 곁에 잇고, 햇차도 들어왔고, 열린 귀로 개울물 소리, 새소리, 때로는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가. 이밖에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예전에 살던 절에 들러 내가 심어 놓은 나무들이 정정하게 자란 것을 볼 때마다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들의 말 없는 반김은 가슴으로 스며든다. 허공으로 높이 높이 자라 오른 우듬지를 바라보고 줄기를 쓰다듬고 팔을 벌려 안고서 얼굴을 부비기도 한다. 그러면 내 가슴이 따뜻한 기운으로 차오른다. 이 따뜻한 기운은 나무가 내게 건네주는 온기일 것이다.

이 터전에서 사람들은 세월 따라 오고가겠지만 나무들은 의연하게 이 자리를 지킬 것이다. 내가 이 땅에서 사라진 뒤에도 심어 놓은 나무들은 정정하게 서서 내 그림자 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아, 자기가 몸담아 사는 둘레에 나무를 심으라. 그 나무들이 당신의 친구가 되어 지치고 상처받은 삶에 위로와 생기를 나누어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지나간 후에도 당신의 자취로 남을 것이다. 나무나 꽃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가 믿지 않는가에 따라 자연을 대하는 우리들의 인식은 달라진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이며 실험심리학자인 G.T. 페히너는 식물에도 영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없는 것으로 알려진 것은 식물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철학의 원리는 모든 생명체는 ‘하나’이며 단지 그 겉모양만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식물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동물보다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 감각은 동물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 동물은 몸 전체를 움직여 먹이를 찾지만 식물은 몸의 일부분만으로 그 일을 해낸다.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목소리로 서로를 분간하듯이 꽃들은 향기로써 서로를 분간한다.

페히너는 이런 상상도 하고 있다. ‘식물은, 인간이란 두 발을 가진 짐승은 왜 저리도 분주하게 돌아다닐까 궁금해 하면서 자신이 뿌리내린 곳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뛰고, 떠들어대고,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영혼이 있다면, 침묵 속에서 꽃을 피우고 향기를 뿜으며 이슬로 갈증을 풀고 새싹으로 충동을 분출시키는 영혼도 있을 법하지 않은가.’ 서로의 향기로써 대화를 나누는 꽃에 비해 인간들은 말이나 숨결로써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꽃이 훨씬 우아한 방법으로 서로를 느낀다. 인간인 우리는 꽃에게 배울 바가 참으로 많다.

식물도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까? 물론 알아듣는다! 생각을 담은 말이기 때문에 영혼이 있는 존재라면 알아들을 것이다. 식물학자의 실험을 빌릴 것도 없이 언젠가 내 자신도 경험한 바 있다. 어느 해 가을, 개울가에 다른 꽃은 다 지고 없는데 용담이 한 그루 홀로 남아 있었다. 나는 그 꽃 속이 어떻게 생겼을지 몹시 궁금했다.

입 다물고 있는 용담의 꽃봉오리에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나는 네 방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데 한 번 보여주지 않을래?” 하고 청을 했다. 다음날 무심코 개울가에 나갔다가 그 용담을 보았더니 놀랍게도 꽃잎을 활짝 열고 그 안을 보여 주었다.

어떤 대상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먼저 그 대상을 사랑해야 한다. 이쪽에서 따뜻한 마음을 열어 보여야 저쪽 마음도 열린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서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지구상에는 동물과 식물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함께 살아간다.

식물은 인간이 이 지구에 생겨나기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무와 꽃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무한한 우주의 생명 앞에 마주 선 것이나 다름이 없다.

산 목숨을 소홀히 여겨 무자비하게 허물고 살해하는 이 막된 세상에서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신선한 공기를 만들어내는 나무와 꽃 앞에 무릎을 꿇을 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침묵 속에서 전하는 우주 생명의 신비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람은 산소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식물이 없으면 동물은 살아갈 수 없다. 한 그루 나무와 꽃을 대할 때 그 신성 앞에 고마운 생각부터 지녀야 한다.

봄은 가도 꽃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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