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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역 문


계모여 계모여 아이를 때리지 말아라 / 아이를 때리는 건 그렇다 쳐도 아이를 죽이지는 말아라
아이는 정말로 잘못이 없다오 / 울 안에 있는 대추 아이는 먹지 않고
통발에 있는 물고기 아이는 가져가지 않았다네 / 어젯밤 꿈에서 본 우리 엄마
부엌에 들어가 음식을 하고 문을 나와 물을 긷더군요 / 슬픔을 삭이며 소리 내지도 못하더라
창고에는 온갖 곡식 담긴 상자에 / 집 안에는 계수나무로 들보를 만들었네
새매가 그려진 당에는 / 사방에 향주머니 있고
온갖 보물로 장식한 옷은 / 아침 햇살을 받아 광채가 번쩍이네
아이는 굶주림에 괴롭고 추위에 떨어도 감히 그 곁을 쳐다보지도 못하네 / 마당 앞의 참새 둥지에
참새 날아와 지지배배 두 마리 새끼를 품고 있네 / 이놈 너 참새야
차라리 내 폐를 쪼아 먹을지언정 / 내가 찧은 곡식을 먹지 마라
나더러 아침에 흰쌀 찧어놓으라 하셨는데 / 저녁에 헤아려보고 부족하면
계모가 노하실 것이야 / 참새야 날아가거라
어찌하랴! 한두 알 낱알이 / 되려 아이의 목숨을 그르쳤구나 아이의 목숨을 그르쳤구나
들판에 어떤 풀이 피었네 / 꽃 이파리가 작고 가냘프다
이를 캐며 길게 탄식하노니 / 우리와 함께 가자꾸나
우리와 함께 가자꾸나 / 해마다 한 맺힌 넋은 생기 없는 모습으로
사람 향해 입을 벌려 보지만 사람들은 알지 못하네

 

원  문


晩孃晩孃莫打兒 만양만양막타아 / 打兒尙可莫殺兒 타아상가막살아
兒實無罪過 아실무죄과 / 園中有棗兒不食 원중유조아불식
笱上有魚兒不逐 구상유어아불축 / 昨夜夢見我母 작야몽견아모
入厨滫瀡出門汲淸 입주수수출문급청 / 潛悲不敢聲 잠비불감성
倉中有千粟箱 창중유천속상 / 室裏有桂樹爲樑 실리유계수위량
鷹隼畫堂 응준화당 / 中有四角香囊 중유사각향랑
百寶衣裳 백보의상 / 朝日照之爛輝光 조일조지란휘광
兒苦飢兒寒不敢窺其傍 아고기아한불감규기방 / 庭前黃爵巢 정전황작소
飛來啾啾夾兩鷇 비래추추협양구 / 唶彼黃爵 차피황작
寧啄我肺 영탁아폐 / 毋食我稻黍 무식아도서
令我朝舂白粲 영아조용백찬 / 暮來計不足 모래계부족
晩孃怒 만양노 / 黃爵飛去 황작비거
奈何一雙粒 내하일쌍립 / 翻使兒命誤兒命誤 번사아명오아명오
中原有草 중원유초 / 花葉微細 화엽미세
採之長歎 채지장탄 / 爰我衆邁 원아중매
爰我衆邁兮 원아중매혜 / 年年怨魂少顔色 년년원혼소안색
向人呿口人不識 향인거구인부지

- 최성대(崔成大, 1691~?), 『두기시집(杜機詩集)』 권1 「만양편(晩孃篇)」

 

두기시집杜機詩集은 조선후기 문신 최성대가 시 「고낙랑가」·「고현도가」·「고백제가」 등을 수록한 시집.

 

해  설


18세기를 살았던 두기(杜機) 최성대는 민정 세태와 풍속을 섬세한 감정으로 묘사한다고 평가받는 시인이다. 위에서 소개한 작품은 계모의 학대로 죽은 아이가 들판에 이름 모를 풀로 환생하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이의 집안은 부유하였지만 정작 아이는 행복하지 않았다. 평소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계모에게 줄곧 학대를 받은 것이다. 계모의 학대가 심할수록 생모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던지 꿈에서 엄마의 모습을 그리곤 하였다. 계모는 아이에게 곡식을 찧어놓게 한 후 수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이를 들볶았던 모양이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참새에게 곡식 대신 자신의 폐를 쪼아 먹으라 사정하기까지 했을까. 참 얄궂게도 몇 알의 곡식을 빌미로 아이는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 원혼은 들판의 이름 모를 작은 꽃이 되었다. 아이와 닮은 가냘프고 여린 모습으로.

시 마지막 부분에 꽃을 캐는 사람은 누구일까. 최성대는 원한을 품은 여인이 꽃으로 환생한 내용을 다룬 <원녀초가怨女草歌>라는 시에서 “아픈 마음 아직도 그치지 못해/해마다 봄바람에 피는구나/주저하며 사람을 향하는 듯/얼굴에 바른 연지가 붉네/어떤 여인만이 이를 알아보아/꽃을 캐면서 길게 탄식하누나[苦心猶未已 年年發春風 低徊如向人 口輔臙脂紅 惟有蒨裙識 採之長歎息]”라고 하였다. 환생의 모티브에 동병상련의 정서를 자주 구사하는 것은 최성대 작품의 특징이라고 한다. 이로 본다면 꽃을 캐는 사람은 학대받던 아이의 마음을 알아본 같은 처지의 또 다른 아이일 가능성이 높다.

전반적으로 시의 구두나 해석이 분명하지 않다. 게다가 말미의 ‘爰我衆邁 爰我衆邁兮’의 번역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모두 필자의 공부가 부족한 탓이다. 잘못된 부분들에 대해 질정과 가르침을 베풀어 주시길 고대해 본다. 번역도 해설도 부족하면서 감히 이 시를 소개한 이유는 자신의 아픔을 알아달라는 듯 꽃잎을 피웠던 모든 아이를 기억하고 또 그 넋을 위로하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더는 이름 모를 풀이 된 아이들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글쓴이 : 김준섭(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절필絶筆 / 최성대崔成大(1691~1762) 


풍진 세상 잘못 나와 잘 풀린 일 하나 없고 誤出風塵百不遭 오출풍진백부조 

험한 파도에 휩쓸릴까 돛단배처럼 겁을 냈네. 孤檣常怕惡波濤 고장상파악파도 

신통한 단약 만들었어도 시험해 볼 길은 없었고 鍊成丹鼎何曾試 연성단정하증시 

청평검을 얻었어도 끝내 숨겨 두었다네. 斲掘靑萍竟自韜 착굴청평경자도 

 

동해 바다 삼신산에서 벗이 오기를 기다리니 海上應須三島侶 해상응수삼도려 

이제 나는 인간 세상을 구우일모로 하직하네. 人間今落九牛毛 인간금락구우모 

표연히 여기를 떠나 하늘로 올라간 뒤엔 飄然此去空明界 표연차거공명계 

은대궐에 뜬구름은 만 길 높이 솟아있으리. 銀闕浮雲萬丈高 은궐부운만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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