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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뼈 / 심상흠

부흐고비 2021. 5. 7. 05:24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특별상

뼈들이 흐지부지하게 널려있다. 정의라고 신념 했던 가치나 사실들이 제대로 열려지는 일들이 없었다. 살아가는 일들이 내 생각과는 같이 움직이지 않았다. 사사불여의. 뼈대 있는 가문이니, 뼈가 있는 사람이라는 말은 집성촌의 고택과 같이 거대한 가문에서나 있을 수 있는 먼 일이었다. 나를 세울 수 없었다. 사리에 어긋나는 일이 있어도 적당히 얼버무려 버리고 만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는 아버지의 뼈에 많은 억압을 가했다. 특히 외삼촌들과의 다툼에서 어머니는 아버지만 나무랐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외삼촌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작은 외삼촌은 정치를 하겠다고 했으나 여러 번 낙방했다. 본인은 물론 친척들께도 많은 손실을 끼쳤다. 이웃과도 싫은 소리가 나면 원인보다는 아버지의 의견을 막아 버리고는 했다. 사리의 옳고 그름은 늘 뒷전이었다.

“지고 사는 게 편타.”

그렇게 유년시절을 늘 물러서는 환경에서 자랐다. 그렇게 학습된 것일까? 어른이 된 지금도 어떤 언쟁이나 갈등사태 에서도 상대를 설득하거나 기를 꺾어보지 못했다. 평생 살아온 직장에서의 터무니없었던 처사에도 늘 포기와 안주는 내 몫이었다.

‘무골호인’은 뼈 없이 좋은 사람이다. 성질이나 성품이 온순해 어떤 누구에게든 비위를 맞추어 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너무 순하기만 한 사람과 사는 것이 좋다고만 할 수 없다. 그것이 보통 사람들의 하는 이야기다. 매사에 분쟁을 피한다. 그 마음은 억압, 퇴행, 그것보다는 합리화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자체가 나약한 것일까? 차라리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하고 회피함으로 각박한 현실사회를 이겨나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아닐까? 그러나 이율배반적이게도 사람들은 자기의 이해관계에 있는 상대가 무골호인, 그런 사람이기를 기대한다.

뼈 때문에 살았다. 문인협회 사무실을 문학관내 다른 위치로 옮기기로 했다. 집기들이 많았다. 1톤 트럭에 냉장고를 실으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트럭위에 냉장고 아랫부분을 들고 먼저 차체 바닥에 올라갔다. 냉장고 윗부분을 들었던 차 아래의 회원들이 갑자기 힘차게 밀어 올리는 바람에 몸이 완전히 트럭적재함 뒤로 밀려 떨어졌다. 몸 전체가 뒤로 떨어진 것이 아니다. 냉장고와 차 적재함 문짝에 오른쪽 다리가 끼인 채 뒤로 떨어졌다.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세게 부딪쳤다. 피가 흘러나왔다. 머리숱이 듬성듬성한 뒷머리 가운데에 솟아 오른 붉은 혹. 그나마 출혈이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떨어졌다가 일어서는 순간 누워 지내는 아내 생각이 막 스쳤다. 나까지 뇌를 다친다면? 머리뼈가 뇌를 잘 감싸고 있었기에 망정이다. 냉장고를 갑자기 들어 올렸던 회원들도 딱히 과오를 인정할 기분이 아닌 것 같다. 어정쩡하다. 큰 사고로 이어졌다면 심한 교통사고와 같이, 다친 사람만 힘들 뿐이다. 생각 없이 덤벙대다가 생긴 일이다. 마음부터 잘 세워야 한다고 다짐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내는 아직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앓고 있다. 지난해 심한 교통사고로 뇌를 다친 후 심한 어지럼증과 트라우마로 아직까지 집밖을 나서지 못하고 있다. 사고 날 오후에 나는 면사무소에서 서류를 하고 있었다. 이웃집 아주머니의 연락을 받고 사고 지점으로 뛰어오면서 불길한 예감이 머리에 뜨겁게 올라왔다. ‘어찌 이런 일이!’사고현장의 아스팔트위에는 아내의 머리에서 쏟아진 피들이 낭자했다. 거의 죽은 상태로 벌써 엠블런스에 실려 있었다. 사고경위 따위를 알아볼 겨를이 없었다. 엠블런스가 헬기장으로 이동했다. 곧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닥터헬기가 도착했다. 인원관계로 보호자도 탑승하지 못한다고 거절했다.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운전을 해서 백리 떨어진 병원 응급실로 갔다.

아내는 운동복 차림으로 반변천 쪽으로 난 좁은 갓길로 걸어가고 있었다. 가해자는 여든이 넘은 노인 운전자다. 걸어가는 사람의 뒤에서 과속으로 달려와 자동차의 본냇 위로 사람을 쳐올린 것이다. 뒷머리를 유리창에 세게 부딪치며 오륙미터 실려가 땅으로 내동댕이쳐 진 것이다. 가슴뼈가 세대가 부러지고 복숭아뼈 아래 쪽 으로 한 뼘이 넘게 함몰되었다. 어깨며 팔꿈치 뼈의 깨어진 사이로 죽은피들이 시커멓게 엉켜 있었다. 다행히 아내의 뇌 뼈는 그렇게 많이 함몰되지는 않았다. 단단한 머리뼈 덕분에 죽지는 않고 살았다. 무엇보다도 휴유증이 많이 일어날 수 있는 뇌를 다친 것이 문제다. 뇌에 대한 진단이 세 가지가 나왔다.

병상에 있을 때 간혹 정신이 들면 아내는

“돈 많이 물리려 하지마소.”

그 말을 계속 반복했다.

“누가 많이 물러 달라고 물러주는 세상이냐?”

보험사의 보상이란 단지 우리의 불의의 사고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에 불과하고 그것도 가해자는 달랑 빠져버리고 보상전문가인 보험회사 직원과의 일이 아닌가! 더구나 평생 누구와 송사에 한 번도 얽매이지 않았고 고발, 고소, 소송, 법절차 등 법이란 말만 들어도 머리가 아픈 사람이 아닌가. 아내는 세상물정을 몰랐다. 변화를 싫어했다. 다른 사람에게 백 원의 도움을 받았다면 빨리 이백 원의 답례를 해야 직성이 풀렸다. 병상 바닥 보호자용 매트에 뼈대 없는 사람처럼 축 늘어져 앉아 있 나를 향해 돈 많이 물리려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자꾸 하고는 했다.

학가산 아래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이 뇌를 다쳐 옆 병상으로 왔다. 그 농부는 좁은 산촌의 자드락길에서 마주 달려오던 트럭을 피해 좀 넓은 곳에 차를 정차했다. 마주오던 상대 차 운전자가 그의 차를 들이받은 것이다. 목뼈가 금이 간 상태에서 뇌에는 많은 충격을 받은 것으로 진단이 났다고 했다. 그 농부의 부인이 와서 병 수발을 하다가 농사일이 바쁜 관계로 병상은 거의 혼자였다.

“가해자 쪽 사람들은 왜 오지 않아요?”

그는 그들의 방문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잠시 머뭇거리다

“올 행편이 되면 올끼라요.”

그는 보통 환자와는 다르게 병실 침대에 부착된 간이 식탁에 책을 펴고 꼿꼿이 앉아 틈틈이 책을 읽고 있었다. 유교의 경서였다. 그가 자리를 잠시 비운 틈에 나는 펼쳐진 그의 책을 잠깐 볼 수 있었다. 논어였다.

“악불인자, 기위인의, 불사불인자가호기신”惡不仁者, 其爲仁矣, 不使不仁者加乎其身

무골호인은 뼈 없이 좋은 사람,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물렁한 사람이다. 공자는 제대로 된 사람은 나쁜 사람을 미워할 뿐만 아니라 나쁜 사람으로부터 미움 받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비타협적으로 살 때라야 비로소 악한 일에 가담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뇌를 다친 상황에서도 마음의 뼈들을 가다듬고 있었던 것 같았다. 병원 복도의 휴게실에서 그와 나란히 자주 않았다. 그래도 그는 가해자를 원망하는 말은 잘 하지 않았다. 그의 본성은 경전의 교훈을 고스란히 따르지는 않고 마음을 다스리는 글로만 생각하는 것일까?

사람이 모여서 사회를 이룬다. 법을 만들고 계약을 만들어 사회를 지탱한다.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는 것은 상대 존중과 상호이해이다. 우리 몸의 장기들을 연결하고 감싸서 더욱 단단하고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뼈다. 뼈가 우리 몸 속 구석구석 박혀 단단히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나와 타인의 삶을 연결시켜 주고 지탱해준다.

“돈 많이 물리려 하지마소.”

“올 형편이 되면 올끼라요.”

집사람이 병상에서 자주자주 하였던 말. 학가산 농부의 여유. 가만히 생각하면 참 허황하거나 방임하는 말 같다. 나는 이따금씩 가해자를 크게 원망하거나 찾아오지 않는다고 괘씸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나쁜 놈들!’나는 욕설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아내나 농부의 그 진심은 화를 내거나 조바심하는 나에게 오히려 여유를 갖으라는 충고를 하는 것은 아닐까? 조바심하거나 다그치지 말라는 것으로 받아드리자.

흔들려도 꿋꿋이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마음의 뼈이다. 어떤 사물과 사람을 대할 때 마음을 놓아 경솔해서는 서는 안 된다. 몸을 지켜주는 뼈가 있듯 마음에도 뼈가 있어야 한다. 마음의 뼈는 경험과 훈련 그리고 자아와의 끝없는 교감으로 다듬어지고 빛을 발한다. 마음의 뼈를 단련할 일을 우리는 쉬지 않고 해야만 한다.

마음의 즐거움은 좋은 약이 되지만, 마음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한다. 마음의 뼈를 세우는 일은 무엇일까. 꽤 많이 생각했다. 뼈 속에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갈등사태에서 회피와 포기만이 능사가 아니다. 갈등사태에서도 견딜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 공간은 자기 마음의 여유요, 흔들림 없는 긍정의 공간이다. 꽉 채워진 뼈보다 공간이 있는 뼈가 더 단단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뼈 속에 완충의 스펀치를 만드는 일이다. 거울을 보면서 일어서자. 뼈 속에 마음의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일로 일상을 지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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