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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밍밍함, 그 끌림 / 박성희

부흐고비 2021. 6. 18. 08:31

눈이 가는 곳에 마음도 간다고 하지만 예외는 있게 마련이다. 어시장에서 만난 개복치가 그랬다. 오래된 어물전 귀퉁이에 내걸린 개복치의 사진은 좀 유난스러웠다. 평범한 생선의 대가리를 뚝 잘라놓은 듯한 외형에 몸의 끝부분엔 아래위로 뾰족한 지느러미가 뿔처럼 돋았다. 배지느러미도 없어서 얼핏 보면 생선이라기보다는 꼬리가 떨어져 나간 연 같았다. 배는 잿빛이 간간이 섞인 흰색에다 등허리는 푸른색이었다. 거대한 몸에 이목구비는 어쩌면 그리 오종종한지 기이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피부 만은 철갑처럼 견고해 보였다. 어설픈 생김새 때문에 개복치는 제대로 생선 대접을 받지 못했다. 이름마저 귀한 대접과는 거리가 먼 물고기였다. 복어과 이면서 생선을 낮추어 부르는 치자를 단것도 서러운데 앞머리에 하찮다는 뜻을 가진 개 자까지 달았으니 말이다.

가판대 위에는 해체되어 절단된 개복치의 잔해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주름이 굵은 여주인이 갑옷처럼 질긴 표피는 특수 제작된 칼이나 톱이 아니면 손질할 수 없다고 했다. 딱딱한 피부에 부딪혀 상처가 떠날 날이 없지만 삶을 이어준 고마운 생선이라고 덧붙였다. 이상야릇하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개복치의 속살은 눈처럼 희고 매끄러웠다. 흡사 수분을 다 날려버린 우유 덩어리 같았다. 손으로 살짝 눌러보았다. 청포묵처럼 탱글탱글한 게 살짝 입에 대보니 맛은 밍밍했다.

어시장 나들이를 간다는 소리에 딸아이가 개복치를 사 오라고 신신당부를 해서 물어물어 예까지 온 것이었다. 유명한 식당에서 난생처음 맛본 개복치 볶음에 매료되었단다.

자극적인 맛에 길들인 사람들의 지친 속을 뭔가 허전한듯한 개복치의 속살이 조물조물 어루만져준다고 했다. 껍질에 붙어있는 힘줄은 쫄깃한 수육으로, 담백한 속살은 횟감으로, 아가미는 매운탕거리로 불티나게 팔린다고 하니 시절 따라 사람들의 입맛도 달라지는 모양이다.

때로는 근사한 화원의 꽃보다 수수한 들꽃이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듯 개복치가 그랬다. 낡은 신발처럼 푸대접받던 생선이 이제 동해 근방에선 큰일을 치를 때면 꼭 상에 오른다니 격이 많이 달라졌다. 색깔도, 냄새도 맛도 없는 생선 같지 않은 생선으로선 크게 출세한 셈이다. 집채같은 몸에 비해 속은 너무나 여려서 툭하면 기절해서 죽어버릴 정도라니 그 또한 안쓰럽다. 오죽하면 유리멘탈 이라고 놀릴까. 그런 소심함을 감추려고 지느러미를 뿔처럼 세우고, 표피를 더 거칠고 두껍게 만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개복치의 하얀 속살 몇 덩어리를 사서 뜨거운 몰에 잠깐 데쳐 숙회로 내왔다. 비린내 나는 갈치를 유독 좋아하는 남편도 처음엔 머뭇거리다가 슬며시 젓가락을 가져갔다. 나도 속살 한 점을 깻잎에 싸서 음미하듯 오물오물 씹어보았다. 쫄깃한 식감이 청포묵 같은데 묵이 가지는 토속적인 향이 없다. 무미, 말 그대로 아무런 맛이 없다. 모르는 사람이 한 점을 먹어보곤 생선임을 짐작도 할 수 없겠다 싶었다.

초장을 쿡 찍어 밍밍함에 맛을 입혀본다. 새콤하고 달큰한 맛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초장은 개복치의 심심한 맛을 순식간에 잠식해버린다. 몇 번은 그 상큼한 맛에 끌렸다. 그러나 이내 혀가 질렸는지 그 붉고 요염한 맛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항아리에서 집 간장 한 종지를 떠왔다. 짭짤한 액체에 데친 개복치 한점을 살짝 찍어 맛을 보았다. 순박한 것은 순박한 것의 묘미를 안다. 처음엔 그저 찝찔하기만 하던 것이 씹을수록 오묘한 맛이 난다. 탱글탱글한 개복치의 몸이 짠 간장 물을 받아들이며 제 몸을 풀어 준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개복치 한 접시를 맛있게 비웠다.

세상은 온통 자극적이다. 거리의 불빛도, 사람들의 옷 색깔도, 심지어는 말투조차도.

나도 그런 현란한 변화가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조류겠거니 했다. 가끔은 그 밀물 같은 새로움의 바다에 몸과 마음을 슬몃 띄워보기도 했다. 그러나 과하면 물리는 법. 어느 순간부터 편리한 것들이 식상해지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입맛도 슬그머니 변했다. 치즈 번을 두른 피자가 휘저어 놓은 속은, 담백한 된장국을 흘려 넣어야 진정이 되곤 했다. 무지하게 좋아했던 스파게티도 참기름에 조물조물 무쳐낸 갖은 나물 비빔밥에 밀려났다. 단순한 위장의 반란이 아닌 듯했다. 고향의 산천을 기억하는 연어처럼 생각과 몸이 자꾸만 과거로 달려가는 중인 모양이다. 그것은 어떤 복고적인 느꺼움이었다. 추억과 본능을 새김질하는 밍밍함으로의 회귀였다. 그래서 요즘은 음식을 만들 때도 인공 감미료 대신 자연에서 난 재료에서 그 원래의 뭉근한 맛을 우려내려고 애를 쓴다. 또 팬에 후딱 볶아내는 요리법 대신 푹 고거나 찌는 방식을 좋아하게 되었다.

밍밍하다는 것은 단순한 싱거움이 아니라 순하다는 뜻이다. 인공이 만들어내지 못하는 순수의 발로다.

한때 누군가 내게 밍밍한 사람이라고 했을 적에 은근히 생채기가 일어났던 기억이 있다. 고지식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꽤 오래 뇌리에 남아 스스로 재미없는 사람이란 울타리에 나를 가두어 놓았다. 그것은 기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했다. 이제 가슴속 나이테가 늘어나면서 그런 평가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오히려 세속의 때가 덜 묻은 사람이란 뜻이겠거니 스스로 해석하며 웃고 만다.

밍밍하다는 것은 혀에 착 감기는 맛이 아니라 여운을 남기며 소화되는 내내 은근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맛이라 여긴다.

개복치의 뽀얀 속살 같은 맛에 중독되어 가는 요즘이다. 그것은 비단 먹거리뿐만 아니라 사람을 사귀는 일에도 통한다. 장미는 장미대로, 들꽃은 들꽃대로의 매력이 있겠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숨어 펴 소박한 향기와 오종종한 얼굴로 맞아주는 들꽃의 다소곳함이 맘에 와 닿는다. 그런 들꽃 같은 사람이 좋다.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살면서 눈이 조금씩 깊어져 가는지 이제 원래부터 품고 있었던 것들에 관심이 간다. 덧칠하지 않은 밍밍함이 좋은 것은 나 또한 자연에서 왔기 때문이리. 원래의 향기는 대부분 무에 가까울 만큼 연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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