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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소리곳간 / 하재범

부흐고비 2021. 10. 21. 09:14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가작

소리를 들으면 색깔이 보인다. 내 기억 속에는 많은 소리들이 저장되어 있다. 소리들은 그들을 탄생시킨 배경을 가지고 있고 배경은 색깔로 내 기억 속에 이미지화 되어있다. 눈을 감고 소리를 들여다보면 소리는 그가 가진 빛깔의 색채로 펼쳐진다.

빗소리는 황토색깔이다. 봄비치고는 제법 굵은 비가 흙냄새를 날리며 황토 마당을 적신다. 꼬마는 큰형의 커다란 군용 우의를 머리 위로 덮어쓰고 비 오는 마당 가운데 가서 쪼그리고 앉는다. 꼬마만의 독특한 빗소리 즐기기다. 우의 자락이 사방으로 비에 젖은 땅바닥에 쫙 깔려 바깥 세계와 완전히 밀폐되면 우의 속은 작은 텐트로 변한다. 땅의 지열과 꼬마의 체온으로 텐트 안은 금방 따뜻해지고, 황토 향기 은은한 공간 속에서 빗소리의 연주가 시작된다. 토닥 토닥 토다닥 토다닥. 굵은 빗방울 가는 빗방울, 약해졌다가 다시 세 진다. 우의건반에 부딪치는 빗소리는 밀폐된 우의 속에 공명되어 아름다운 연주가 된다. 요즘도 비 오는 날이면 가끔은 마당으로 뛰어 나가고픈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지금은 우의도, 흙 향기 피워 올리던 황토마당도 없다. 베란다 창문에 비끼는 빗소리에서 황토색깔 추억만 새길 뿐이다.

다듬이 소리는 흑갈색이다. 돌만큼이나 딱딱하고 무거운 박달나무 다듬잇돌 위에 가지런히 개어진 옥양목 이불 홑청이 올려져있다. 그 앞에 단아한 자세로 어머니가 앉아 박달나무 다듬이 방망이를 조용히 집어 든다. 처음엔 마치 조율을 하듯 오른손으로 천천히 높게 낮게 똑 딱 똑 딱 두드린다. 다음엔 왼손이 추임새를 넣듯 오른손 사이사이로 사뿐사뿐 끼어들며 서서히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또다다닥 또다다닥 앞서거니 뒤서거니 높았다 낮았다 장단 또한 변화무쌍이다. 어머니는 다듬이 소리에 동화되어 무아지경 속에서 신묘한 가락을 만들어 낸다. 세상의 어떤 악기가 이렇듯 청아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을까. 봄 가지에 깃들던 뭇 새의 지저귐, 여름날 천둥을 앞세운 소나기, 가을 날 포도 위 낙엽 구르는 소리, 겨울 삭풍에 맨몸으로 울던 나목. 박달나무 다듬잇돌과 박달나무 다듬이 방망이가 만나서 퉁겨 내는 소리 알갱이들은 그들이 수수백년 간직해 왔던 소리의 기억과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어머니 세대의 한이 승화한 것이다. 어머니는 세상의 어떤 연주자보다도 더 경건하고 열정적으로 연주를 하고 있다. 청중 한사람 없는 가을밤에... 윤기가 흐르는 흑갈색의 다듬잇돌과 방망이가 만들어 내는 소리는 그 흑갈색의 분신들이다.

‘엘비라 마디간 협주곡’은 녹색이다. 말간 봄 햇살 속으로 두 연인이 걸어오고 있다. 세상은 온통 신록으로 눈부시다. 손에 들린 광주리 속에는 신발 속에 감추어 두었던 동전 몇 닢으로 마련한 마지막 만찬이 담겨 있다. 서커스단 줄타기 소녀 엘비라와 군대를 탈영한 유부남 식스틴 중위. 이 아름다운 녹색의 전원이 그들의 슬픈 사랑의 마지막 도피처다. 나란히 누워서 바라보던 느티나무의 푸른 잎새들. 저리도록 고운 음률이 녹색의 풍경과 어우러져 절대의 미감을 연출한다. 너무나 고요하고 평화로운 녹색의 숲 속. 소녀는 하얀 나비 한 마리를 쫓아간다. 나비를 두 손으로 감싸는 순간 화면은 정지되고, 이어지는 두발의 총성은 사랑의 완성을 의미 하는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비극미의 극치를 보여 준다. 암전이 오고 오케스트라 연주는 여성 코러스로 변한다. 스웨덴 영화 <엘비라 마디간>이 내 기억 속에 깊이 각인 된 것은 전편을 흐르는 배경음악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21번 2악장> 때문이지 싶다. 이 영화 이 후엔 모차르트 협주곡을 <엘비라 마디간 협주곡>이라 부른다. 이 음악이 흐르면 세상은 온통 녹색이다.

조각구름을 배경으로 날으는 갈매기 소리는 코발트 색깔이다. 자맥질한 바다 속에서 듣는 찰랑거리는 파도 소리는 사파이어 색깔이다. 이른 봄 얼음 깨어지는 소리는 투명한 무색이다. 억새 언덕을 건너오는 가을 바람 소리는 은회색이다. 메아리도 없이 밤하늘을 채우던 기러기 소리는 은은한 달빛이다. 보리밭에서 지저귀던 종달새 소리는 에메랄드의 파편이다. 개나리 핀 양지쪽에 종종거리며 어미 뒤를 쫓는 병아리 소리는 노란 꽃잎들이다. 이렇듯 소리는 색깔을 담고 있다.

시각장애인에겐 소리가 곧 풍경이요, 색깔이다. 베토벤은 이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자연의 빛깔들을 <전원 교향곡> 속에 음률로 재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나는 이 곡을 들으며 베토벤이 그리워했던 자연의 빛깔들을 본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안타까움은 그리움으로 자란다.

눈을 감고 귀 열어 놓으면 기억의 갈피에서 마치 풍경이 걸어 나오듯, 배경음악을 듣고 있으면 영화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하타리의 ‘아기 코끼리의 걸음마’를 들으면 더 넓은 평원이 보이고, 닥터 지바고의 ‘라라의 테마’를 들으면 장엄한 설경이 보인다. 소리는 언제나 풍경과 색깔을 그려낸다. 소리가 그려낼수 있는 세계는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무한대로 넓어진다. 아름다운 소리가 우리에게 주는 위안과 기쁨은 꽃과 바다와 하늘같은 자연을 보고 느끼는 시각적 혜택에 못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음악과 자연의 소리를 찾게 마련이다. 토스카의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 플롯 메뉴엣 ‘아를르의 여인’,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등은 인생은 왜 아름답고 사랑은 왜 감미로우며 음악은 왜 감동적인지를... 솔숲에 이는 바람소리, 계곡의 냇물소리, 찌는 여름 한낮 후두둑 호박잎을 두드리는 소나기 소리는 인간의 영혼은 자연의 소리에 의해 정화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현대인들은 자꾸만 자연에서 멀어져 간다. 따라서 일상에서 듣는 소리도 많이 변했다. 새소리 벌레소리 대신 자동차 바퀴의 마찰음과 크락숀 소리, 공사장이나 공장의 금속성, 골목을 누비는 장사치의 확성기 소리 같은 혼탁한 소리를 들어야 한다. 우리의 심신이 황폐해 지고 병들어 가는 것은 영혼을 헹구어 줄 소리를 잃어버린 까닭이다.

사람들은 곳간에다 재물을 쌓아 간다. 더 많이 쌓기 위해 아등바등 이다. 재물은 채울수록 욕심과 걱정만 크질 뿐이다. 고운 소리를 채울 수 있는 곳간 하나 마련하여 세상의 아름다운 소리들로 가득 채우고 싶다. 햇살이 눈부신 봄날 아침이면 황금빛 참새 소리를 끄집어내어 날리고, 여름 한낮이 무료하다 싶으면 물빛 가야금 소리라도 불러내어 벗하고, 고향이 그리운 날은 신세계 교향곡 2악장쯤이면 어떨까. 그 곳간을 풍요롭게 채우기 위해 내 귀는 언제나 고운 소리를 향해 음바라기를 한다.



하재범 프로필: 2004 《문학세계》 수필 등단, 2011년 《아동문예》 동시 등단.

                 동시집 『수업 끝』, 『진짜 수업』 산문집 『꼰대와 스마트폰』

                 현재: 월간 『좋은만남』 칼럼 ‘kids시대’ 연재 초등교 및 지역아동센터 동시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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