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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풀벌레소리 / 안재진

부흐고비 2022. 1. 12. 09:09

두어 달 만에 고향 집을 찾았다. 오래 비워둔 집이라 무언가 서먹서먹하다. 간신히 마음을 가다듬고 잠을 청하지만, 눈이 감기질 않는다. 되레 정신만 말똥말똥하여 온갖 상념이 강물처럼 이어진다. 이미 오래전에 쓰레기 더미 속에 처박은 너절한 일들이 떠오르고, 결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연들까지 차례로 나타나 머리를 어지럽힌다.

고향도 멀어지면 타향이라 했던가. 처음 떠나 살 때는 문득문득 그리웠다. 골목길도 그리웠고, 그 골목길에 들꽃같이 곱게 피어 웃는 이웃들도 그리웠다. 맞이하고 떠나보낸 동구 밖 느티나무 그늘도 잊을 수 없었고, 봄이랑 가을이랑 무언가 끊임없이 새로운 역사를 몰아오던 바람결도 잊을 수 없다. 솜털 같은 바람이 대지를 쓰다듬으면 빈터마다 무리지어 꽃은 피었고, 여울물 소리 같은 바람이 스산하게 술렁이면 수목들은 일시에 붉은빛으로 변신하여 먼 여행을 떠나게 하는 바람이었다.

그런 감정은 나도 모르게 가문 날 논물이 잦아들 듯 서서히 지워지고 이제는 하나둘 낯설게 느껴지니 세월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의 마음이 막히고, 이웃이 막히고, 길처럼 뚫려있을 것 같으면서도 모든 관계가 철저하게 단절된 도시의 벽 속에 갇혀 살다 보니 어쩜 내 마음도 돌처럼 굳어져 그런지 모른다. 보이는 것마다 두렵고, 들리는 소리마다 짜증스럽고, 생각하는 일마다 의심스러운 뒤틀린 시대의 풍속도, 그런 도심 속에 눈먼 사람처럼 허우적거리며 적응하다 보니 끝내 사람 만나는 자체가 불편스러울 만큼 내 정서와 감정은 돌이 되었나 보다.

잠을 이루긴 틀린 것 같아 차라리 날밤을 새우기로 마음먹고 작은 창문을 열어 젖혔다. 풀벌레 소리가 요란스럽게 밀려든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 거대한 무리가 한꺼번에 쏟아내는 장엄한 하모니였다.

나는 홀린 듯 풀벌레 소리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서편 모퉁이 조그만 뜰에서 흘러나온 소리다. 그곳은 지난봄 선홍빛 영산홍이 구름처럼 엉클어져 피었고, 지금은 푸른 잎사귀가 뒤덮었으니 아마 풀벌레의 아늑한 놀이터가 되었나 보다.

그런데 그 울음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해거름에 산모롱이를 돌아가며 긴 울림을 남기는 기적소리 같기도 하고, 어느 산사 종소리처럼 무성했던 여름을 가슴에 쓸어 담고 붉게 물든 산허리를 밟으며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가는 계절의 떨림 같기도 하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바라보니 어둠 속에도 밤하늘이 무척 맑게 다가온다. 반쪽 달빛은 벚나무가지 사이로 조용히 흔들리고 길게 늘어진 나무 그림자는 오늘따라 무슨 유령처럼 차갑게 느껴진다.

무엇을 거두려는 것일까. 분명 그냥 들리는 풀벌레 소리가 아닌 것 같다. 가을을 불러들이는 애잔한 떨림이다. 아니, 지겹게 끌어안고 있던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원초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 길을 인도하는 간절한 전주인지 모른다.

사실 오늘 낮만 해도 무척 더운 날씨였다. 30도를 오르내리는 찌는 듯한 열기는 길거리를 한산하게 만들었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 나는 휴가철을 예견치 못해 차표마저 구할 수 없었다. 오래전에 미리 약속한 일인 지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간신히 버스표를 구해 탈 수 있었다. 냉방시설이 허술한 낡은 차량이라 온몸이 땀으로 범벅된 채 4시간도 넘게 먼 길을 달려왔다. 그리고 개떡 같은 강의를 하느라 온몸은 파김치가 되었다.

이렇듯 여름은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은데 말이 없고 생각이 없고 문명도 누릴 줄 모르는 작은 생명이 무슨 능력으로 가을이 발밑 가까이 서성거린다는 천상의 소리를 전하는 것일까.

그렇다, 분명한 생명인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풀잎을 밟고 다니는 무례처럼 인간은 세상 앞에 진지하지 못한 것 같다. 관심 밖이었던 생명, 그 풀벌레가 인간이 알지 못하는 세계를 미리 알아 유난스럽게 울림을 만드는 신비 앞에 나는 모처럼 겸손이란 뜻을 생각한다.

어릴 때 할머니는 예지적인 말씀을 자주 하셨다. 석양이 유난히 붉게 타오르면 며칠 동안 몹시 덥겠다 하셨고, 솔방울이 지나치게 다닥다닥 많이 달린 것을 보면 가뭄이 심한 해가 되겠다고 하셨다. 달무리가 선명한 여름밤에는 3일 안에 비가 온다고도 하셨고, 마을에서 마주 보이는 채약산 능선에 안개가 자주 깔리면 올해는 비가 많아 흉년이 들겠다고도 하셨다.

할머니에게 무슨 특별한 신통력이 있어서 그런 말씀을 한 것은 아니었다. 세상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예견자도 아니요, 대나무를 흔들며 남의 운명을 재단하는 점성가는 더더욱 아니다. 가까운 읍내 시장에도 가본 적이 없는 그야말로 가정이란 테두리 속에서 운명처럼 갇혀 산 분이다.

그런데 그런 할머니가 가끔 독백처럼 흘린 말이 용케도 맞아떨어지는 일이 더러 있었다. 그때는 할머니에게 눈 밖에 또 하나의 다른 눈이 있는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비록 세상 물정 모르는 할머니였지만 눈만 뜨면 바라보이는 하늘과 바람, 해와 달, 산하와 숲에서 보고 느낀 경험적 영감이었거나 옛사람의 선험적 주지를 놓치지 않고 가슴에 품어온 탓이라 생각된다.

이렇듯 자연은 인간이 예측 가능한 시공의 질서와 운명을 은밀히 일러주고 있지만, 인간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눈을 감고 생각을 멈추었기에 볼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오늘따라 풀벌레 소리가 애틋하게 나를 끌어당긴다. 그 소리에 젖어 있노라니 항상 하찮게 생각했던 관심 밖 그 풀벌레가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더 높은 곳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곧 가을이 오겠구나. 서럽게 타오르는 그 이파리들이 바람 따라 흩날리면 나는 어느 길에서 무엇을 만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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