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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옷이 말한다 / 이후남

부흐고비 2022. 6. 23. 07:40

‘시골경찰’이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시청한 적이 있다. 경찰복을 입은 탤런트들이 출연하여 주로 노약자들을 보살핀다. 한적한 골목에서 느닷없이 ‘경찰’하고 부르는 소리에 순간적으로 휙 돌아보는 두 사람, 복장만 그럴 듯한 새내기 경찰들이다. 횡단보도에 불법주차된 승용차 때문에 통행이 불편하다는 민원이다. 차 앞 유리에 붙은 휴대전화 번호로 차주와의 통화가 이루어진다. 이들은 대뜸 “경찰입니다”라며 자초지종을 알린다. 곧 나타난 젊은 여자 차주로 민원은 해결된다. 이들은 근엄한 목소리로 “횡단보도에 차 세우면 안 됩니다. 운전 조심하세요.”라는 인사까지 잊지 않는다. 차가 출발하는 것을 보고서야 이들도 제 갈 길을 간다. 정말 멋지다. ‘옷이 말을 하는구나’ 싶다. 저희들끼리 하는 말이 또 절창絶唱이다. 출연자들은 ‘경찰’하고 부르는 소리에 머뭇거림 없이 바로 돌아봐지더라며 자신들도 신기해한다. 그렇다. 그들이 착용한 경찰복이 말을 했을 것이리라.

흔히들 ‘옷이 날개’라고 한다. 그럴 듯한 말이긴 하다. 후줄근한 차림보다야 철 따라 마침맞게 갖추어 입은 이를 보면 그 말이 틀리지 않음을 곧 알게 된다. 옷을 잘 차려입는다고 천사처럼 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화려하게 보이는 겉모습만으로 날개를 삼는다는 것은 어쩐지 불안하다. 날고 싶다는 욕망의 분출인가 요즘 거리에는 날개가 달린 듯한 옷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내 반짇고리에 있는 날 선 가위, 그것으로 저 말의 갈기 같은 날개를 삭둑 잘라 내고 바느질로 깨끗이 마무리해 주고 싶다’는, 엉뚱하게도 큰일 날 생각이 꼬리를 친다. 마음 씀씀이가 선한 이에게 보이지 않는 날개는 저절로 생길 것이다. 그런 날개는 긍정의 에너지를 풍겨 이웃을 환하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벼슬이란 입었다 벗었다 하는 옷과 같다. 자리를 떠나면 보통 사람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 정상이다.’라는 글을 본 적 있다. 그러나 한 번 길든 벼슬이란 옷의 위력과 그 따스함을 쉽게 잊지 못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비정상적으로 그 자리를 오래 지키려는 자는 입은 옷의 말, 즉 옐로카드 같은 경고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하리라.

한때 ‘옷장 심리, 패션 치료’라는 말에 관심을 가졌다. ‘미국 어느 정신과 의사의 『옷장 심리학』이란 저서에서 입은 옷만 잘 봐도 근원을 알 수 있다, 은연중에 옷을 통해 마음속 상처를 말하게 된다니 매우 흥미롭다.’라는 말은 어느 정신과 전문의가 밝힌 바 있다. 국내에선 아직 보편화되진 않았지만 치료 과정에서 환자의 옷차림은 참고할 만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의 심리 상태는 어떠할까 몹시 궁금해진다. 나는 특히 검은색 옷은 즐겨 입지 않고 한번 입던 옷을 줄곧 입곤 한다. 이러한 내 옷차림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할까. 분수에 어긋나지 않게 ‘그냥저냥 적당히 입자’일 것 같다.

수필 습작 때다. 자신의 글을 문우들 앞에서 직접 낭독할 때 알몸 드러낸 듯해서 몹시 부끄러웠다. 청탁 받은 원고 정리할 때는 그나마 속옷 한 장 걸친 듯했으나 열없기로는 매한가지였다. 그 후의 작은 바람은 ‘언제 내 수필에 소박한 무명 옷 한 벌 입혀 나들이 시킬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수필집을 짓고 싶은 심경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첩을 뒤적이다가 검정색 가운에 검정 사각모를 쓰고 찍은 졸업 앨범에 눈길이 머문다. 내 생각은 단박에 강산을 예닐곱 바퀴를 거슬러 올라간다. 육이오 동란 통에 간신히 타지로 나가 중학교에 진학하고 졸업한 후 고향에서 머물게 되었다. 방학 때마다 풀 먹여 다림질한 새하얀 칼라의 교복 차림의 친구들 모습이 보인다. 진학進學 자체보다 그들이 입은 교복의 말, ‘우리는 여고생, 너는 집순이’라고 하는 것 같아 그것이 너무 서러워서 울고 싶었다. 그로부터 먼 후일, 만학으로 얻은 졸업 사진 속의 검정 가운이 나를 달래 주었다. 이젠 눈물 흘리지 말라고.

지난해부터 ‘마스크를 써라, 혹은 마스크 착용’이라는 말이 이제는 별로 어색하지 않다. 일상생활에서 꼭 챙겨야 할 소지품쯤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마스크를 쓰게 되면 자연히 말수가 줄어든다. 마스크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이 말을 조금 다른 각도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자연이 인간 사회에 전하고자 하는 긴한 메시지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아직도 정답을 안다는 이는 없고 예방책만 강조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꼭 해야 할 말만 하라는 것은 아닐지. 이참에 깊이 헤아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우리나라뿐만 아닌 지구상에 있는 인류 전체를 협박하는 괴바이러스의 출현을 우연이라기엔 너무 엄청난 비밀스러운 무엇이 숨어 있으리란 느낌,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나는 여러 벌의 전통 수의를 만들었다. 좋은 곳에서 철 바꾸어 입으라고 사철 옷을 겹겹이 만든다. 남자 옷의 대미大尾는 심의나 도포로서, 여자는 원삼圓衫으로 한다. 특히 눈여겨볼 것은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여행은 여비가 들지 않으니 돈 넣을 주머니는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

남편의 수의 입히는 것을 참관參觀했다. 유리창 저 멀리 넓은 평상 위에 목욕재계한 남편이 생전처럼 반듯하게 누웠다. 남, 여 염사殮師의 능란하고 침착한 손놀림이 믿음직하다. 먼 길 떠날 참인데 홑바지, 겹바지 허리춤은 잘 추슬러 허리끈으로 단단히 잘 매었는지, 그리고 넓은 바짓갈랑이는 걸음걸음이 불편하지 않게 대님으로 잘 오므려 매어 주어야 하는데··· 아내의 쓸데없는 마지막 노파심이다. 맨 나중에 옥색 양단 도포를 입힌다. 나 보란 듯 넓은 도포 소맷자락이 크게 한 번 공중에서 펄럭인다. 마지막으로 남편 얼굴을 한 번만 더 보려는데 면보*로 덮고 두비*로 감싸진다. 천금* 지요*, 홑이불, 겹이불 두루 갖추었으니 깔고 덮고 오래오래 단꿈만 꾸라는 염원을 담아 보낸다. 손수 장만한 옷을 입히고 보니 그 와중에 적이 안심이 된다.

남편 떠난 후 얼마 되지 않아 꿈에서 만났는데 허름한 작업복 차림으로 묘목 손질을 하고 있었다. 비단옷 차려입고 '나 먼저 가오' 하더니 그새 작업복으로 갈아입었으니 참으로 부지런한 정원사가 맞나 보다. '그래요, 무슨 일이라도 열심히 해야지요' 나는 잠결에서 그를 다독여 준다.

* 면보: 수의 중 얼굴을 덮는 천
* 두비: 목 위 전체를 싸는 천
* 천금: 고인이 덮는 이불
* 지요: 관 바닥에 까는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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