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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국수나무꽃 / 백송자

부흐고비 2022. 7. 20. 07:45

훅, 가슴을 파고드는 꽃이다. 산길 옆 제법 큰 바위 아래 축 늘어진 가지 끝마다 소복하다. 가느다란 줄기 뻗음이 얼핏 보아 국수 면발 같다고 하여 붙여진 국수나무에 꽃이 피었다. 다섯 장의 꽃받침은 넉넉한 품으로 노란 꽃술과 하얀 꽃잎을 꼭 껴안고 있다. 꽃말은 모정母情이다.

조금만 눈을 들면 쉬이 만날 수 있는 꽃이다. 아기 새끼손가락 손톱 크기만큼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다. 화려하지 않아도 나비와 벌이 많이 찾아드는 꽃, 한참이나 길섶에 쪼그리고 앉아 바라본다. 꽃송이를 쓱 만져보니 화들짝 놀란 꽃잎들이 일제히 움츠리는 듯 그 떨림이 전해진다. 산행하는 건 이미 까먹고 국수나무꽃 근처에 자리를 편다.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를 따라 마신다. 커피 향 위로 꽃향기가 쏟아진다. 물소리며 새소리까지 더해지니 입안은 오묘한 맛으로 황홀하다. 콘크리트 벽에 갇힌 곳에서 맛보던 고급스러운 향은 아니지만, 논두렁에서 마시던 미숫가루 같은 고향의 내음이다. 투박한 아버지의 손에 묻어있던 흙냄새 같기도 하고 엄마의 치맛자락에 배어있던 국수 장맛처럼 담박하다.

신록이 더 깊어지기 전, 산 가장자리에서 국수나무는 서둘러 꽃을 피운다. 우뚝한 나무의 잎들이 우거지면 제때 광합성을 하지 못하기에 부지런히 폭풍 성장한다. 척박한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생육에 힘쓰는 나무의 지혜가 돋보인다. 내 자식만큼은 좋은 환경에서 따스하고도 고운 햇볕을 충분히 받으며 주눅 들지 않고 활기차게 살아가길 바라는 어버이 같다.

국수나무꽃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국수가 먹고 싶다. 잘 꾸며진 가게가 아닌 멍석을 깔고 모깃불 피워놓고 마당에서 먹는 그런 국수가 당긴다. 국수 한 그릇을 비우고 벌러덩 드러누워 수많은 별을 세어보며 달무리를 쫓고 싶다. 엄마의 무릎을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던 언니의 앙칼진 표정과 건넌방에서 새어 나오던 오빠의 책 읽는 소리도 그립다. 말없이 곰방대만 두드리던 아버지도 보고 싶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면, 부모님은 집으로 돌아오셨다. 워낭소리 앞세우며 사립문을 들어서자마자 아버지는 소죽을 끓이고 엄마는 밀가루를 반죽하였다.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던 그 시절에는 이맘때 즈음이면 쌀은 이미 떨어졌고 보리쌀도 간당간당하였기에 저녁마다 국수를 해서 먹었다. 많은 글루텐이 생성되어야 면발이 쫄깃하다는 과학은 몰랐어도 엄마는 반죽한 밀가루 한 덩이를 이리 치대고 저리 치대고 하였다. 혹여나 닥칠지도 모를 자식들의 굴곡진 삶을 미리 치대어 반듯하게 돌리려는 심정으로 엄마는 온 힘을 다하였으리라.

엉키듯 달라붙은 밀가루가 각질처럼 일어났던 엄마의 손이 매끈해지면 대청마루에 돗자리를 펴고 널빤지를 깔고 그 위에 밀가루 반죽을 올려놓았다. 홍두깨를 눌러 밀고 또 밀었다. 콩가루도 솔솔 뿌렸다. 얼굴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연신 훔치다가 가끔은 동작을 잠시 멈추었다. 밀가루 묻은 손등으로 땀도 닦고 허리도 툭툭 쳤다. 허리에는 애써 감추고자 했던 아픈 곳들이 허연 자국으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마당 끄트머리에 머물던 햇살은 사립문으로 비켜나고 노을이 물드는 하늘을 엄마는 한번 올려다보곤 했다.

내 얼굴보다 작았던 반죽 덩이는 종잇장만큼이나 얇게 펴져 둥근 원을 그렸다. 낭창낭창 늘어지는 국수판을 반듯하게 개켰다. 양쪽 끝부분은 싹둑 잘라 아궁이에서 구워 먹었다. 갓 구워낸 국수꽁지의 바삭한 맛은 국수가 먹고 싶은 날에는 입안에 먼저 고인다. 굵지도 얇지도 않게 썰어내면 면발은 길었다. 그 면발이 뚝 끊어지지 않게 조심스러워하던 엄마의 손놀림은 자식들의 꿈을 지탱해주는 힘이었을까. 돌아보면 엄마에게는 늘 자식을 향하는 간절함이 먼저였다. 쟁반에는 면발 위로 모정이 수북하게 쌓여 앞산 봉우리처럼 봉긋했다. 아버지는 소죽을 일찌감치 끓여놓고 부엌 가마솥에 불을 지핀 지 오래다.

엄마는 부뚜막에 오른쪽 다리를 척 올려놓고 아주 조금씩 면을 가마솥에 살며시 놓았다. 온도가 높은 수증기에 엄마 손은 불붙은 숯을 꺼내놓은 듯 벌겋게 익었다. 면이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한 손으로는 나무 주걱을 휘휘 저었다. 가마솥 안쪽에서부터 끓던 물은 면발을 만나면 부르르 거품이 일어나고, 밀가루를 뒤집어썼던 허연 면발은 투명한 색으로 익어 갔다. 엄마의 단벌 치마에는 불티로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이때 아버지의 불땀 조절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불길을 보태야 면발이 퍼지지 않으며 통통 튀듯 살아 있다. 평소 데면데면하던 두 분이 이 순간만큼은 찰떡궁합이었다. 흙물 칠한 부뚜막으로 육수가 끓어 넘치면 살강 위에 가지런히 엎어 놓았던 일곱 그릇에 국수를 담아내었다. 후루룩 후루룩, 면발 건져 올리는 소리와 그릇에서 전해지던 온기는 긴 세월이 지나도 퇴색하지 않고 정겨우며 따사롭다. 이 따스함은 풍요 속에서도 맥없이 노곤하여 자주 허기지는 내 마음을 보듬으며 채워주곤 한다.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도솔산 중턱에서 울어대는 산새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모로 누워있던 엄마를 깨우는 것일까. 끙끙대며 일어나는 엄마의 동작이 목소리보다 먼저 내 머릿속을 채운다.

“국시 먹자고?”

안부의 말을 앞뒤로 뭉텅 자르는 엄마다.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엄마, 숨이 가쁘다며 작은 알약에 의존하여 하루하루를 보낸다. 순간 나는 말없이 엄마의 숨소리에 집중하며 생각에 잠긴다. 어쩌면 엄마는 국수 한 그릇을 말고 싶은지도 모른다. 행주치마 두르고 대청마루에서 면발을 뽑아내던 그때를 떠올리고 있음이라. 장수를 상징하는 국수에 자식들의 무궁한 앞날을 염원했을 어미 마음을 이제는 빈 가슴으로 어루만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끝까지 보듬고 있는 모정은 닳지도 않는다.

내년에도 나는 엄마에게 국수나무꽃이 피었다고 화신花信을 전하며 일상적인 이야기를 푸지게 늘어놓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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