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서 시인 1962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조선대 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목포대 교육학과 박사과정 수료. 1996년 《삶 사회 그리고 문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철도원 일기』와 『기차 아래 사랑법』, 『광주의 푸가』가 있다. 제7회 윤상원문학상, 2014 도라지문학상 수상. 가거도行(행) / 박관서 밀려난 꿈은 가장자리가 가장 깊다/ 사는 일에 목을 걸고 맴을 돌다/ 국토의 맨 끝 가거도에 이르러/ 이웃 나라 닭 울음에 귀 기울이고 있는/ 녹섬 앞 둥구회집 평상에 앉아/ 검정 보리술로 목을 헹구면/ 박혀 있던 낚시미늘마저 따뜻해진다/ 밤 깊은 동개해변 찰랑거리는/ 둥근 달빛에 젖어 흠뻑/ 사는 일 흔적도 없이 지워져/ 남의 나라 남의 일이 될 즈음에야/ 새로워진 나를 만난다 스스로 깊어진..
회사일로 가족과 떨어져 지방에서 장기 체류하던 때가 있었다.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었지만 주중에는 회사에서 마련해준 변두리 아파트에서 홀로 지내야 했다. 돌이켜보면 퍽 외롭고 힘든 시기였다. 그때만큼 가족이 소중하게 느껴졌던 적도 없었다. 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오면, 나를 맞아주는 것은 가족이 아니라 불 꺼진 썰렁한 방이었다. 괴괴한 어둠 속에 꼭 닫혀 있는 현관문 앞에 설 때마다 왜 그렇게 낯설고 외롭게 느껴졌는지. 시한을 맞추기 위해 하루 종일 바동거리다 온 날이나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날, 또는 어쩔 수 없이 양심을 져버리면서까지 내키지 않는 일을 하고 돌아온 날이면 더욱 기분이 울적했다. 그때마다 가정이란 한 남자의 초라한 하루를 늘 용서해주고 보듬어주는 곳이란 생각이 들..
산 능선에 덧댄 연한 풀빛이 아슴푸레하다. 문을 나서면 아지랑이 아련하게 손짓하고 개울가에는 연분홍 물결이 너울거린다. 사월 꽃심이 들어서는가 분주한 마음이 산으로 앞장선다. 참꽃 따러 가야겠다. 품 너른 산벚나무가 마을을 굽어보는 산길에 접어들었다. 숨소리가 귀에 차오를 즈음에 산 중턱에 다다랐다. 소나무와 편백이 비탈길에 뻗정다리로 서 있는 모양새가 속정조차 모르던 그 옛날 지아비가 저랬을까. 인생의 뒤안길에서 살아온 날들을 구구절절 말하자면 책 한 권이 될 거라던 어머니들의 타령처럼 꽃이 흐드러졌다. 진달래는 시나 노래로 사람들의 정서 한 귀퉁이를 장식한다. 시어가 꽃향이 되고 리듬을 부추긴다. 진달래 피어있는 산을 올려보면 파란 저고리에 연분홍 옥사치마 입은 무희들이 버선발로 잘게 잘게 제겨디디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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