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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대구탕을 끓이는 시간 / 정희승

by 부흐고비 2022. 7. 1.

회사일로 가족과 떨어져 지방에서 장기 체류하던 때가 있었다.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었지만 주중에는 회사에서 마련해준 변두리 아파트에서 홀로 지내야 했다. 돌이켜보면 퍽 외롭고 힘든 시기였다.

그때만큼 가족이 소중하게 느껴졌던 적도 없었다. 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오면, 나를 맞아주는 것은 가족이 아니라 불 꺼진 썰렁한 방이었다. 괴괴한 어둠 속에 꼭 닫혀 있는 현관문 앞에 설 때마다 왜 그렇게 낯설고 외롭게 느껴졌는지. 시한을 맞추기 위해 하루 종일 바동거리다 온 날이나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날, 또는 어쩔 수 없이 양심을 져버리면서까지 내키지 않는 일을 하고 돌아온 날이면 더욱 기분이 울적했다. 그때마다 가정이란 한 남자의 초라한 하루를 늘 용서해주고 보듬어주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 가장의 하루는 얼마나 평범하고 보잘것없는가. 구두 밑창에 묻은 먼지, 겨드랑이에 배인 땀, 통화, 보고, 열등감, 실망, 짜증, 울화, 하품, 실적, 고함이나 욕설, 힘 있는 자에게 굽실거림 …… 그런데도 절망하지 않고 날마다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것은 뒤에서 말없이 용기를 북돋아주고 격려해주는 가족의 사랑과 관용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도저히 외롭고 쓸쓸함을 감당할 수 없을 때는, 대구를 한 손 사들고 와서 텅 빈 숙소에서 탕을 끓였다.

그때 알았다. 어둠이 내리는 저녁에 대구탕을 끓이는 것은 그날 하루와 화해하는 일임을, 초라한 나를 쓰다듬어주고 다독여주는 일임을. 분주하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돌아와, 밑이 넓은 냄비에 너붓너붓 썬 무를 깔고, 다시마와 멸치를 우려낸 맛국물을 부은 다음, 갖은양념을 둘러 대구탕을 끓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안정되었다. 치열한 생존경쟁과 가중되는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이나 긴장 우울, 그런 것들을 누그러뜨리는 방법도 다 그 조리법 안에 들어 있었다.

냄비를 불에 올려놓고 탕 안을 들여다보면, 대구 한 마리가 세상의 모든 감정을 눈빛에 갈무리한 채 말없이 누워 있었다. 그 눈빛 앞에서는 어떤 슬픔이나 분노ㆍ고통ㆍ절망도 자신 있게 주장할 수가 없었다.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변덕스럽고 일시적인 감정들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삶과 죽음을 초월한 듯한 그 눈빛,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또한 대구는 아무리 뜨거운 탕 속에서도 몸을 뒤척이는 법이 없었다. 들끓는 세사와는 무관하다는 듯 언제나 고요하고 평온하게 누워 있었다.

나는 그런 대구를 보며 가끔 천년의 역사를 여신 위대한 박혁거세왕朴赫居世王을 생각하기도 하였다. 왜 혁거세왕은 인간 세상을 다스리신 후 하늘에 오르셨다가, 7일 만에 사지四肢가 절단 난 채 지상으로 떨어져 버리고 만 것일까? 왜 천상이 아닌 분요한 인간 세상에 한사코 몸을 나뉘어 묻히셨던 것일까? 아우성이 비등하는 탕 속에 토막 난 몸으로 초연히 누워 있는 대구를 보면, 대구 또한 성골聖骨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탕을 끓일 때는 한소끔 푹 끓이고 나서 어슷어슷 썰어놓은 대파와 고추를 넣는다. 그리고 미나리나 쑥갓과 같은 풋풋한 푸성귀를 몇 잎 띄우고 국물 한 술을 떠서 맛을 본다. 조금 싱겁다 싶으면 간장이나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나는 간을 볼 때는 맛뿐 아니라 대구의 삶도 음미해보고자 노력했다. 자작자작 끓는 소리에 조용히 귀를 적시며 대구의 지난한 삶을 되새겨보는 것은 아주 의미 있는 일이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대구는 맑고 찬 곳을 좋아하는 어종이다. 알라스카에서 동해안에 이르는 연안이 그의 생활영역이다. 대구는 청정한 해류 속에서만 산다.

대구는 외관을 요란하게 꾸미거나 치장하지 않는다. 언제나 기초화장만 한 물맛 나는 얼굴로 지낸다. 내면 또한 기름기로 채우지 않는다. 그래서 맛이 비릿하거나 탁하지 않고 정갈하다. 대구는 수식과 묘사로 가득한 소설이라기보다는 질박하고 담백한 수필에 가깝다.

또, 자신을 위해 살과 뼈를 갈무리하지 않는다. 몸을 보시하려는 넉넉한 마음으로 근골을 키운다. 그래서 준치나 전어처럼 살에 잔가시를 심지 않는다. 가시 날을 벼르지도 강도를 높이지도 않는다. 살은 살대로 뼈는 뼈대로 담담하다. 나는 아직 누구도 대구를 발라먹는 데 성가시다고 말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대구는 깊이를 안다. 거대한 빙산, 날카로운 여나 거친 바위 밑에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아무리 어둡고 차가운 심해에서도, 지느러미는 고요한 가운데 흐느적거린다.

또한 넓이를 안다. 꿈꾸는 자는 한 곳에 정주하지 않는다. 대구의 삶은 대양을 포괄한다.

끓는 탕 안을 들여다볼 때마다 내가 사는 세상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끓는 세상에서는 속俗보다는 성聖이, 열정보다는 냉정이, 웅변보다는 침묵이 더 소중한 법이다. 동요와 분란 속에서도 한 점 흐트러짐 없이 평온하게 누워 있는 대구 한 마리, 대양을 건넌 자의 여유와 세사를 초월한 자의 의연함이 느껴졌다. 대구는 곧 이 시대의 성이요, 냉정이요, 침묵이었다.

나는 탕이 펄펄 끓어도 성급하게 바로 냄비를 내리지 않았다. 불을 뭉근하게 줄여놓고 대구가 충분히 뼈를 풀어낼 때까지 기다렸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 자작자작 끓는 소리, 거실에 떠도는 구수한 냄새… 혼자 사는 집에도 온기가 피어올랐다. 그때쯤 소주를 따서 힘들고 지친 나에게 잔이 넘치도록 술을 따라주었다. 그래, 오늘 무척 바쁘고 힘든 하루였지. 내가 힘이 들면 나로 인해 분명 즐겁고 기쁜 사람도 있을 거야. 남을 탓하지 말고 좀 더 힘을 내보자고. 나는 그렇게 대구탕을 앞에 놓고 세상과 화해했다.

한 잔 술에 뜨거운 진국을 훌훌 들이켜면 속이 풀리면서 온몸에 훈훈한 열기가 번져나갔다. 뜨거운 것을 앞에 놓고는 아무리 힘들어도 좌절하거나 절망할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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