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 이혜영
복숭아나무에 꽃이 피었다. 죽은 줄 알았는데. 지난해 멧돼지가 들이받아 나무둥치가 찢긴 채 땅에 누워버렸던 나무다. 그렇게 상처를 입었던 나무가 올봄 꽃을 소담하게 피워냈다. 콩알만 한 복숭아가 맺혔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목숨을 움켜잡고 있었다는 것이 신비스러움을 지나 경외스럽기까지 하다. 뭔가 부여된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수행자 같다. 복숭아나무를 바라보며 그만도 못한 자신이 더없이 부끄럽고 마음의 회한으로 남는다. 오랫동안 가꾸어 온 농장이 너무 방대한 탓에 관리가 소홀해졌다. 야산을 개간해서 만들었던 농장이 그동안 나무와 숲이 우겨져서 다시 야산으로 변해간다. 이제는 다시 날고 기는 짐승들의 터전이 되어버렸다. 농장에 심어진 복숭아는 익을만하면 멧돼지가 주인이었고, 맛이 든 감은 새들이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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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5. 23.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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