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 역 문 이런 방법으로는 군역을 영구히 벗어날 수 없으므로 온 종족이 재물을 모아 족보를 위조하는데, 성(姓)만 같으면 관향(貫鄕)이 어디인지는 구분하지도 않은 채 부조(父祖)를 바꾸고 파계(派系)를 거짓으로 칭하여 향리에서 으스대며 스스로 반족(班族)이라고 일컬어 윤리를 손상하고 풍속을 무너뜨립니다. 그러다가 역을 져야 할 때가 되면 많은 종족이 한꺼번에 일어나 도포를 입고 비단신을 신고서 족보를 안고 관청의 뜰에 들어가는데 족보는 진귀한 비단으로 싸고 장황(粧䌙)이 찬연합니다. 그것을 가져다 살펴보면 모두가 이름난 석학의 후예이거나 훈벌(勳閥)의 후손이므로 수령들은 진위를 구별할 수 없어 일률적으로 면제해 주기 때문에 조금 부유한 백성은 모두 한가로이 놀게 됩니다. 그러나 군액(軍額: 군사의 정원)..

번역문과 원문 걸인이 부처요, 부처가 걸인이니 처지를 바꾸어 공평히 보면 모두가 한 몸이라. 불상 아래 뜰 앞에서 사람들은 떠받드는데 걸인과 부처 중에 누가 진짜인 줄 알리오? 乞人如佛佛如人 걸인여불불여인 易地均看是一身 역지균간시일신 佛下庭前人上揭 불하정전인상게 乞人尊佛辨誰眞 걸인존불변수진 - 권섭(權燮, 1671~1759), 『옥소고(玉所稿) • 시(詩)』 13 「거지라고 업신여기지 말라[乞人不可慢視]」 해 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우리 사회는 안 그래도 심해지던 양극화 현상이 더욱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2020년 8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임금노동자 11만 3천 명이 줄었다고 합니다. 특히 고용 안정성이 취약한 비정규직, 그 가운데..

번역문과 원문 학문의 길은 다른 길이 없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가는 사람이라도 붙들고 물어야 한다. 學問之道無他. 有不識, 執塗之人而問之, 可也. 학문지도무타, 유불식, 집도지인이문지, 가야. -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연암집(燕巖集)』권7 별집 「북학의서(北學議序)」 해 설 1781년(정조5)에 연암 박지원은 초정 박제가의 『북학의』에 서문을 써 주면서 그 첫마디를 이렇게 시작했다. 박제가는 1778년 이덕무와 함께 중국을 다녀왔다. 『북학의』는 그 견문의 기록이다. 박제가의 중국 전략보고서인 셈이다. 박지원은 그로부터 2년 뒤인 1780년에 중국을 다녀왔다. 그의 『열하일기』는 이후 대표적인 연행록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두 사람은 중국을 배워야 한다는 것에 의기투합..

번역문과 원문 푸른 등라 우거진 곳 밤은 깊었는데 한번 누워 보니 홀가분하여 온갖 생각 사라지네 멀리 산굴에 구름 피어나 다시 달을 가리고 작은 시내에 조수 가득 차 다리가 잠기려 하네 몸에는 벼슬이 없으니 가난해도 오히려 즐겁고 흉중에는 시서(詩書)가 있으니 비천해도 또 교만하다 서글퍼라 새벽이 찾아온 우물에는 벽오동에 서린 가을 기운이 또 쓸쓸하겠지 綠蘿深處夜迢迢 녹라심처야초초 一枕翛然萬慮銷 일침소연만려소 遠岫雲生還掩月 원수운생환엄월 小溪潮滿欲沈橋 소계조만욕침교 身無簪組貧猶樂 신무잠조빈유락 腹有詩書賤亦驕 복유시서천역교 怊悵曉來金井畔 초창효래금정반 碧梧秋氣又蕭蕭 벽오추기우소소 - 성여학(成汝學, 1557~?), 『학천집(鶴泉集)』 2권, 「권귀(權貴)를 비웃다 - 당시 이이첨이 공의 시를 보고자 하였는..

번역문과 원문 비유하자면 물건이 눈앞에서 멀어 가면 차츰 작아지고 가까우면 차츰 커지는데, 작으면 살피기 어렵고 크면 보기 쉬운 것과 같이 환난(患難)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比如物之在眼 漸遠則漸小 漸近則漸大 小則難察 大則易見 患難亦同 비여물지재안 점원즉점소 점근즉점대 소즉난찰 대즉이견 환난역동 - 이익(李瀷, 1681~1763), 『성호사설(星湖僿說)』 권26 「경사문(經史門)」 해 설 훗날의 어려움을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급박한 일이 닥치고 나서야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는 경우가 잦다. 어쩌면 훗날의 어려움을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 그 자체를 아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지금 하는 노력이 정말 미래를 대비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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