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 / 김태길 사람은 가끔 자기 스스로를 차분히 안으로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나는 어디까지 와 있으며, 어느 곳에 어떠한 자세로 서 있는가? 나는 유언 무언중에 나 자신 또는 남에게 약속한 바를 어느 정도까지 충실하게 실천해 왔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답함으로써 스스로를 안으로 정돈할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안으로 자기를 정리하는 방법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것은 반성의 자세로 글을 쓰는 일일 것이다. 마음의 바닥을 흐르는 갖가지 상념을 어떤 형식으로 거짓 없이 종이 위에 옮겨 놓은 글은, 자기 자신을 비추어 주는 자화상이다. 이 자화상은 우리가 자기의 현재를 살피고 앞으로의 자세를 가다듬는 거울이기도 하다. 글을 ..
작금의 심정 / 김태길 대한민국 학술원이라는 고령집단에 깊이 관여한 까닭으로, 팔순이 넘는 나이임에도 근래 문상問喪의 기회를 자주 가졌다. 문상을 거듭하는 가운데 삶의 덧없음을 새삼 느껴온 작금이다.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길목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오늘 홀연히 떠나는 것을 여러 차례 보았다. 삶과 죽음의 사이가 멀고먼 거리라는 착각 속에 살아온 세월이 가소롭다. 삶과 죽음이 바로 이웃이라는 사실을 깜박 잊었던 탓으로, 앞을 다투며 짧은 시간을 길게 보낸 나날이 어리석었던 것이다. 스피노자의 말이 생각난다. 존재하는 모든 개체個體들은 하나뿐인 대자연을 구성하는 여러 부분들이며, 이 점에서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스피노자의 말이 다시금 진리로서 다가온다. 스피노자가 말했듯이..
꽃 떨어져도 봄은 그대로 / 김태길1 좋은 글은 읽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 글재주와 짜임새에 있어서 나무랄 곳이 없더라도,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좋은 글이 아니다. 글이 감동을 주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 경우가 있다. 표현의 절묘함이 감동을 주기도 하고, 작품 속을 흐르는 정서가 감동을 일으키기도 하며, 세상을 보는 작가의 안목이 감동을 부르기도 한다. 한당(閑堂)의 수필 는 특별히 문장이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그 가운데 깊은 정서가 흐르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이 감명 깊게 읽히는 것은, 그 가운데 심오한 삶의 지혜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한당은 이 작품에서 청(淸)대 말기의 중국학자 유월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유월이 과거에 응시했을 때 ‘꽃은 떨어져도 봄은 그대로 있다(花落春仍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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