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세우다 / 조현숙
저기서 꽃 무더기가 걸어온다. 포개고 또 포갠 꽃숭어리들을 한 아름 안은 엄마가 만삭의 임부처럼 뒤뚱거린다. 꽃들이 앞을 가리고 잎사귀가 눈을 찌른다. 화사해서 더 가늠이 안 되는 무게가 묵직하게 배를 타고 내려간다. 그래도 씨억씨억 잘도 걷는다. 염천의 햇발이 자글거려도, 엄동의 된바람이 칼춤을 추어도 기어이 희붐한 새벽길을 열어 꽃 떼를 몰고 간다. 동살 아래서 분홍, 오렌지, 보라, 연노랑 꽃주름이 일렁인다. 사람들이 꽃을 본다. 꽃만 본다. 깍짓동만 한 무더기에 가려 발은 보지 못한다. 꽃들이, 댕강 잘린 발목으로 그들의 꽃밭을 떠나왔음도. 꽃집 앞에서 망설인다. 꽃 선물을 좋아하지 않으니 사는 일도 거의 없다. 그래도 작정하고 나선 길이다. 통유리문으로 꽃꽂이를 하는 여자가 보인다. 연분홍 거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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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6. 1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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