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유월에 매실을 담가 두고 잊은 듯이 지냈다. 항아리 밑에 거무스름한 것이 고여 있어 손가락으로 찍어 보니 조청처럼 찐득하다. 항아리를 자세히 살펴보니 실금이 나 있다. 아쉬움에 뚜껑을 열자 열여덟 아가씨처럼 탱글했던 매실은 수분이 빠져서 쪼글쪼글하다 못해 초라하기 그지없다. 볕이 좋아 베란다 한쪽에 둔 항아리 뚜껑을 열어 놓는다. 바람도 볕도 제한되어 있어, 마치 시골에서 평생을 지내다 기력이 쇠하여 어쩔 수 없이 도회지 자식들에게 얹혀사는 뒷방노인처럼 애잔하다. 창문을 연다. 가을볕은 성품 좋은 사람처럼 온화해서 좋다던 당신. 가을이면 으레 곱고 청명한 볕을 갈무리하고 싶어 했던 당신이시다. 긴 줄에 매달린 빨래가 만국기 되어 새물내를 휘날리는 날이면, 고추 쪄 널고, 고구마 줄거리 삶아 볕에 펼..
수필 읽기
2022. 1. 25.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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