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건너다 / 임정임
밤은 어디에나 공평하게 내린다. 하루의 끝, 벨벳처럼 부드러운 어둠에 싸여 천변을 걷는다. 고요한 은색 물줄기가 엎드린 채 흘러간다. 도시의 노란 불빛은 현란한 무늬결이 되어 물 위를 떠다니고 옅은 습기를 머금은 간들바람이 살랑 코끝을 간질이며 스쳐 간다. 끈질기게 질척대던 늦더위는 흔적조차 없다. 여름은 그저 오래된 꿈같다. 친숙했던 풍경은 밤의 베일 너머에서 매번 다른 감상을 전한다. 뚜렷한 경계를 짓지 않는 어둠, 선명한 컬러로 처리되던 것도 색을 잃고 점점 한데 섞여 뭉그러진다. 예민한 촉수처럼 먼저 달려 나간 내 안의 어떤 감각이 그 윤곽을 조심스레 더듬는다. 익숙한 듯 낯선 밤의 테두리. 나는 어쩐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나를 움직이던 한낮의 동력은 어느새 저만치 비켜난다. ..
수필 읽기
2022. 4. 15. 08:30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