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연지 / 박양근
비가 그치지 않던 날이면 경주 불국사 못미쳐 자리한 연못으로 간다. 언젠가 찾아갔던 푸른 호수 물빛을 닮아 한결 아늑한 곳이다. 사방이 둑으로 싸여 빗기가 가득 차면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늦은 오후 시간이면 더욱 적막해진다. 그 호수도 그랬다. 자네. 들리는가. 이곳에는 가을비가 사흘째 내리고 있네. 대지는 아직 뜨거우나 빗물엔 가을 기운이 서늘하네. 비가 아닌 가을비이지 않은가. 비록 차가울지라도 물기가 흥건히 밴 땅바닥을 맨발로 딛고 싶을 걸세. 비파 현을 지그시 누른 손마디가 떨리는 느낌이지. 일찍 떨어지다가 가지에 걸린 잎이 사립문 댓살에 걸린 종달새 깃털처럼 흔들거리네. 어떤가. 내 가슴은 이미 안개에 도적맞아 버렸는데. 자네의 도시에도 비는 내리겠지. 모두 우산을 펼쳐 자연의 강림을 가로막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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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4. 15.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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