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 조일희
서랍을 정리하다 말고 방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차곡차곡 포개진 수첩들이 눈에 들어와서다. 어느 해는 하늘색으로, 어느 해는 갈색으로 압축된 지난날들이 한 뼘이 넘는다. 맨 위에 있는 수첩을 펼쳐본다. 수첩 곳곳에는 여행의 흔적, 기념일의 분위기, 우울한 날의 표정까지 삶의 부스러기들이 마른 잎사귀처럼 납작하게 눌러져 있다. 단정한 글씨는 고요하게 맑은 마음이었을 테고, 휘갈긴 글씨는 찌뿌둥하게 흐린 마음이었을 테다. 뒷장으로 넘어갈수록 수첩은 여백이 많아진다. 새해에 가졌던 야무진 마음이 헐거워진 탓이리라. 몇 장 더 넘기자 눈에 익은 이름과 연락처가 길게 나열돼 있다. 일전에 구호활동가인 한비야 씨의 글을 읽으며 몹시 공감한 적이 있다. 한 해의 마지막을 묵은 짐 정리와 마음 정리로 마무리한다는 내..
수필 읽기
2021. 3. 2. 08:45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