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과 환상 / 이희순
한 칸 폭에 대여섯 걸음 작은 웅덩이 가에 노랑꽃창포 가족이 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무심한 사십년지기였다. 노랑꽃창포는 초여름의 문턱에서 좁고 무성한 잎사귀 사이로 길쭉한 꽃대를 올려 듬성듬성 노란 꽃 한 번 피우면 그뿐 더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 만한 매력이 없어 보였다. 그래선지 내 고장 사람들은 개난초'라 불렀다. 논배미가 밭으로 바뀌면서 창포 가족한테 변고가 생겼다. 쓸모가 없어진 웅덩이가 메워지고 창포 무리는 뿌리째 뽑혀 돌무더기에 널브러져 죽어 가고 있었다. 언덕 아래 후미진 진창에 있는 것들은 이미 목숨을 잃었다. 뽑아내기가 까다로워 제초제를 뿌린 듯했다. 나는 한낮의 참상에 넋을 놓았다. 겨우 숨이 붙어 있는 세 뿌리를 추슬러 남새밭 가에 심었다. 두 해가 지나니 창포 삼 남매는 몰라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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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 1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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