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공화국 / 양성우 여보게 우리들의 논과 밭이 눈을 뜨면서/ 뜨겁게 뜨겁게 숨쉬는 것을 보았는가/ 여보게우리들의논과밭이가라앉으며/ 누군가의이름을부르는것을들으면서/ 불끈 불끈 주먹을 쥐고/ 으드득 으드득 이빨을 갈고 헛웃음을 껄껄껄/ 웃어대거나 웃다가 새하얗게 까무러쳐서/ 누군가의 발 밑에 까무러 쳐서/ 한꺼번에 한꺼번에 죽어가는 것을 보았는가// 총과 칼로 사납게 윽박지르고/ 논과 밭에 자라나는 우리들의 뜻을/ 군화발로 지근지근 짓밟아대고/ 밟아대며 조상들을 비웃어 대는/ 지금은 겨울인가/ 한밤중인가/ 논과 밭이 얼어붙는 겨울 한때를// 여보게 우리들은 우리들을/ 무엇으로 달래야 하는가// 삼천리는 여전히 살기 좋은가/ 삼천리는 여전히 비단 같은가/ 거짓말이다 거짓말이다/ 날마다 우리들은 모른체하고/ ..
그곳의 가을날은 찬란했다. 들녘은 누렇다 못하여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었고, 곳곳에 허수아비는 혼자 취하여 우스꽝스럽게 서 있었다. 시절을 만난 참새들은 떼를 지어서 이 논 저 밭으로 몰려다니고, 우여어 우여어 흙팔매질로 새를 쫓는 아이들의 목소리만 들 가운데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어쩌면 해지는 산그늘을 타고 오는 서늘한 바람의 탓이었을까? 반쯤은 마르고 푸석해진 풀잎이 이제 막 눕기 시작하는 밭 언덕에는 늙은 호박덩이들이 잠시 낮잠을 즐기는가 하면, 낮고 쓸쓸한 무덤들 너머로 총총히 어우러진 억새들이 춤을 추는 듯이 흰 머리채를 앞뒤로 주억거리고 있었다. 뙤약볕 내리는 헛간의 지붕 위에는 진홍의 고추가 널리고, 뒤뜰에서는 휘어진 나뭇가지 끝의 색 바랜 잎사귀들을 제치고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고운 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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