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의 스케치 / 김학
염천의 개 혓바닥처럼 축 늘어진 앞집 옥상의 빨래가 갑자기 무녀(舞女)의 치맛자락처럼 펄럭이기 시작한다. 찌는 듯하던 여름밤의 무더위가 슬그머니 뒷문을 박차고 꽁무니를 뺀다. 혁명군인 양 치달아온 바람이 고요한 누리에 파문을 일군다. 뜨락의 나무들은 바람의 위세에 눌려 저마다 아부의 깃발을 흔든다. 키다리 백목련은 무당춤을 추어대고, 분기(分器)에 발을 담근 대나무는 나긋나긋 승무를 춘다. 수줍음을 타던 백합은 사근사근 어깨춤을 추어대고, 대추나무․은행나무․모과나무․사과나무․감나무․백일홍은 디스코를 춘다. 어느덧 우리 집의 손바닥만 한 뜨락은 무도장이 되고 말았다. 바람이 한눈을 팔면 몸놀림이 느슨해지다가 바람이 다시 눈을 부릅뜨면 어느새 춤동작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바람에 놀아나는 나무들의 작태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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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6. 25.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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