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플러그드(unplugged) 풍경 / 정성화
창고에서 가장 큰 가방을 꺼냈다. 앞뒤로 볼록한 가방의 모양새가 내 마음을 부풀게 했다. 사실 나를 더 설레게 하는 것은 남편을 떼어놓고 간다는 거였다. 내 옷, 내 신, 내 모자, 내 화장품 등, 내 소지품만으로 여행 가방을 꾸리는 것으로도 스트레스가 반은 풀리는 것 같았다. 그가 오랜 승선생활을 끝내고 내 곁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모든 게 감격스러웠다. 칫솔 통에 그의 칫솔이 꽂혀 있는 것, 그의 속옷이 빨랫줄에 널려 있는 것, 외출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여는 순간, “당신이야?” 하는 남자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까지. 인생의 참 행복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마법은 오래 가지 않았다. 어느 날부턴가 우리는 서로를 불편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배에서는 선장의 말 한 마디에 모두가 “Yes, Sir"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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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7. 2.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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