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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에서 가장 큰 가방을 꺼냈다. 앞뒤로 볼록한 가방의 모양새가 내 마음을 부풀게 했다. 사실 나를 더 설레게 하는 것은 남편을 떼어놓고 간다는 거였다. 내 옷, 내 신, 내 모자, 내 화장품 등, 내 소지품만으로 여행 가방을 꾸리는 것으로도 스트레스가 반은 풀리는 것 같았다.

그가 오랜 승선생활을 끝내고 내 곁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모든 게 감격스러웠다. 칫솔 통에 그의 칫솔이 꽂혀 있는 것, 그의 속옷이 빨랫줄에 널려 있는 것, 외출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여는 순간, “당신이야?” 하는 남자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까지. 인생의 참 행복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마법은 오래 가지 않았다. 어느 날부턴가 우리는 서로를 불편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배에서는 선장의 말 한 마디에 모두가 “Yes, Sir"을 외치는데, 마누라는 예사로 반기를 드니 당황스럽고 서운하다고 했다. 나는 나대로 그가 나의 살림살이에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것과 간섭하는 게 싫었다. 마누라가 어묵조림에 흰 설탕을 쓰든 황색 설탕을 쓰든 상관하지 말았으면 싶었고, 내가 시장에 가려고 할 때 눈치도 없이 먼저 장바구니를 들고 현관에 서 있는 것도 싫었다. 한 달에 보름 정도는 출근을 하지 않는데다, 비번인 날이면 늘 집에 있는 그가 부담스러웠다. 김밥 중에서 꽁지 부분이 제일 맛있는 것은 한 쪽이 탁 트여있어서가 아닐까. 차츰 나만의 자유가 그리웠다. 왜 내 인생은 ‘변비 아니면 설사’인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얼마 전부터 무슨 일을 해도 재미가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으면서, 괜히 초조하고 불안했다. 내가 마치 ‘장구 깨진 무당’의 처지가 된 것 같았다. 나도 내 자신을 어떻게 조율해야 할지 답답하기만 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너는 할 수 있다’는 응원도, ‘그 정도는 괜찮다’는 위로도 아니었다. 나의 의욕과 자신감을 회복시켜줄 어떤 계기가 필요했다. 그 때 마침 여행을 가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인터넷 접속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 플러그를 잠시 뺏다가 다시 끼우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되듯, 나도 내 자신의 플러그를 잠시 빼어놓는, 언플러그드(unplugged) 상태가 되고 싶었다.

공항을 떠나는 순간, 나는 그저 여권에 적혀있는 ‘생물학적인 나’가 되었다. 이름과 국적, 생년월일과 주민등록번호만이 나의 존재를 증명했다. 내가 살아온 공간에서 빠져나가는 데 그런 최소한의 사실만 필요하다는 게 아이러니컬했다. 내 남편이 누구인지, 내 취미나 내 직업, 내가 살고 있는 집의 가격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그런 것들은 내 등 뒤로 닫히는 출국장 너머에 두고 갈 것들이었다. 누군가와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끝없이 나를 설명하고, 상대방으로부터 이해와 판단을 강요받던 나로부터 벗어나는 것, 여행은 그것만으로도 기립 박수 감이었다.

일상의 반대방향으로 핸들을 꺾어 가게 된 나라, 내 인생과 그다지 상관없어 보이던 나라 스페인과 포르투칼의 수많은 세계문화유산을 둘러보았다. 이 세상이 한 권의 책이라면, 나는 그동안 한 페이지만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던 셈이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 보는 페이지들을 꽤 집중력 있게 들여다보면서 내 자신을 방전시키기도 하고 충전시키기도 했다.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는 우선 여행부터 떠난다. 여행이 그만큼 큰 행복감을 주는 ‘쉼’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여행이란 인생을 길게 사는 방법이기도 하다. 시간을 이동할 수 없는 인간이 넓은 범위의 자유를 가지려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리고 여행이란 내가 알고 있는 형용사와 동사의 리얼리티를 경험하는 일이기도 했다. ‘알함브라 궁전’과 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가 설계한 ‘성가족성당’을 보면서 ‘기가 막힌’이라든지 ‘전율이 흐른다’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온몸으로 느꼈다.

지중해변에 있는 어느 식당에 갔을 때다. 해물볶음밥이 너무 맛있어서 요리사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들었더니 함박 웃으면서 요리 한 접시를 더 갖다 주었다. 우리 동네 청화반점 주인아저씨처럼 말이다. 세상 어디든 인정을 베푸는 모습은 서로 닮은 것 같았다. 마른 스펀지 같은 내 마음 속으로 물기가 조금씩 스며드는 걸 느꼈다. 한국을 떠나온 후 처음으로 남편 생각이 났다.

소박한 눈으로 보자면 여행이란 일상이라는 호수에 던져진 하나의 돌멩이에 지나지 않는다. 흔들리던 수면도 곧 잠잠해진다. 바닥에 가라앉은 돌멩이가 이따금 들썩거리겠지만, 일상의 수평은 바뀌지 않는다. 바닥의 돌멩이를 이따금 들여다보면서 혼자 미소를 짓는 것, 그것만으로도 여행의 의미는 충분하지 않을까.

역사적 문화적 의미가 축적되어 있는 그 곳에 머무는 동안, 정말 오랜만에 내 속이 ‘말’들로 가득차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플러그를 빼어놓고 떠난 여행길에서 나는 한동안 잃어버렸던 내 자신과 다시 접속하고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남편이 공항에 마중 나와 있었다. 열흘 만에 본 그의 얼굴은 홀쭉해 보였다. 마누라가 없는 동안 자유를 마음껏 누렸느냐고 물었다. 그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마누라가 없으니 심심해서 딸꾹질도 반갑더라.”

아, 나는 다시 구속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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