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숫대 / 강돈묵
싸한 바람이 아직 맵다. 코끝과 귀에만 와 닿는다. 밭으로 나갔다. 씨앗을 뿌릴 시기는 아니지만, 밭이 궁금했다. 긴 겨울 동안 둘러보지 않은 밭은 을씨년스럽다. 여기 저기 작물의 시체가 뒹군다. 호박 덩굴이 드러난 갈비뼈처럼 돌담에 누워 지난 시절의 아픔을 말해 준다. 말라버린 고춧대가 지나가는 바람에 엄살떤다. 저쪽 밭두둑에 홀로 선 옥수숫대가 오늘따라 외롭다. 바람받이 두둑엔 칼바람이 매섭다. 옥수숫대가 처량히 울부짖는다. 바짝 마른 옥수숫대. 너덧 잎 남은 이파리가 몸뚱이를 감싸 안고 바람 앞에 울고 있다. 한 잎은 꺾이어 아랫도리를 감았고, 또 한 잎은 위로 어깨를 감싸 안았다. 누렇게 마른 이파리는 영락없는 삼베다. 꺼칠하면서도 풀 먹인 베처럼 온몸을 두르고 있다. 동부 덩굴이 기어올라 등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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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27.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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