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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옥수숫대 / 강돈묵

부흐고비 2020. 11. 27. 08:41

싸한 바람이 아직 맵다. 코끝과 귀에만 와 닿는다. 밭으로 나갔다. 씨앗을 뿌릴 시기는 아니지만, 밭이 궁금했다. 긴 겨울 동안 둘러보지 않은 밭은 을씨년스럽다. 여기 저기 작물의 시체가 뒹군다. 호박 덩굴이 드러난 갈비뼈처럼 돌담에 누워 지난 시절의 아픔을 말해 준다. 말라버린 고춧대가 지나가는 바람에 엄살떤다. 저쪽 밭두둑에 홀로 선 옥수숫대가 오늘따라 외롭다. 바람받이 두둑엔 칼바람이 매섭다. 옥수숫대가 처량히 울부짖는다.

바짝 마른 옥수숫대. 너덧 잎 남은 이파리가 몸뚱이를 감싸 안고 바람 앞에 울고 있다. 한 잎은 꺾이어 아랫도리를 감았고, 또 한 잎은 위로 어깨를 감싸 안았다. 누렇게 마른 이파리는 영락없는 삼베다. 꺼칠하면서도 풀 먹인 베처럼 온몸을 두르고 있다. 동부 덩굴이 기어올라 등허리를 감아 버린 모습. 같이 말라 있다. 그것도 제 몫이려니 참아낸 옥수숫대. 마른 잎 속에는 비바람과 폭염에 시달린 삶이 숨겨져 있다.

마른 줄기에 삼베 같은 잎만 남아 있는 모습에서 문득 아버지를 기억한다. 상복을 입고 짚으로 꼰 새끼로 허리를 질끈 동여맨 아버지. 움직일 때마다 스억스억 소리를 내던 아버지의 상복.

할아버지의 상을 당했을 때, 아버지는 매우 어려워하셨다. 늘 천식으로 거동을 못하시던 아버지는 맏상주의 역할에 힘겨워하셨다. 아버지가 긴 시간 서 계신 것을 그 때 처음 보았다. 언제나 사랑채에 누워 계셨으니까. 누런 상복을 걸치고 힘들어하시던 아버지. 몸피에 비해 넉넉하게 만들어진 삼베옷을 입으시고 늘 상장에 의지하고 계셨다. 밑으로 동생이 셋이나 있어도 맏이의 몫을 감내하려 하시던 아버지를 이 들판에서 만난다.

씨만 심어놓으면 잘 자라는 것이 옥수수다. 관심밖에 두어도 이따금 먹을거리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바람에 약한 작물의 보호막으로도 안성맞춤이다. 지난봄에도 갖가지 작물을 심고 자투리땅에 옥수수를 심었다. 바람막이로 심은 것이다. 샛노란 싹이 올라왔다. 예뻤다. 그러나 그 싹을 보는 재미는 며칠 가지 못했다. 잘 자라는 싹을 까치가 모두 뽑아버렸다. 까치는 싹으로 표시된 옥수수 밑씨를 캐내어 포식하고 있었다. 다시 씨를 심었다. 이번에는 주위에 풀도 그대로 둔 채 심었다. 풀 속에서 제법 자란 후에 풀을 뽑아주자는 심사였다. 하나 그런 나의 의도도 까치는 알아차렸다. 결국 나의 옥수수 심기는 까치 밥 대주기였다. 이렇게 머리싸움을 하는 사이 밭두둑에서는 까치눈을 피한 옥수수 하나가 자랐다. 지난해에는 모두 까치에게 희생되고 이것 하나만이 자랐다. 좋은 땅에서는 모두 없어지고 척박한 밭두둑에서 혼자 견디었다. 대를 잇도록 씨앗을 주고 외로이 서 있는 옥수숫대. 겨우내 매서운 바람살에 심한 기침을 했을 옥수숫대. 그 옥수숫대가 지금 이 순간에도 느닷없이 몰아치는 바람에 스억스억 울어댄다.

아버지는 긴 세월 천식에 시달리셨다. 깡마른 몸매로 누워 계시거나, 앉아 계셨다. 여간하여서는 일어나서 집밖으로 나가시는 경우가 없으셨다. 두 살 터울인 자식들이 서로 엉겨 싸우면, 큰소리로 꾸지람을 하셨다. 그러나 아버지의 음성은 자식들에게 효력이 없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막내둥이의 목소리보다도 작았고, 숨이 차서 제대로 말씀을 이어가지 못하셨다. 그래도 자식들의 다툼이 그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셨다. 지팡이에 의지하고 다가가나 영악스럽기 그지없는 자식들은 가까이 오신 아버지를 멀리하고 저만치 물러나 다툼을 계속했다. 쫓아가면 물러나고, 물러나면 쫓아가던 아버지와 자식들 간의 게임은 언제나 아버지의 주저앉음으로 끝이 났다. 아버지는 그 몰려오는 가쁜 숨을 이기지 못하시고, 주저앉음으로 마무리 지으셨다. 그러나 그 아버지의 울력 속에서 우리 자식들은 잘 자라 모두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어 있다.

밭두둑에 홀로 있어 갖은 비바람을 다 이겨내는 옥수수처럼 아버지는 온갖 풍파와 싸워야 했다. 아버지는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가족을 거느리고 고향을 떠났다. 많은 노력으로 마련한 집이 옛날 고을의 부자가 살던 집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이 집에 사는 아버지에 대해 너그럽지 않았다. 지붕의 썩은새가 두터운 것을 시빗거리로 삼았다. 한 뼘이 넘은 썩은새의 두께가 그들에게는 눈엣가시였다. 썩은새를 가지고 시비이니, 자질구레한 시비야 더 말해 무엇하랴. 아버지는 그토록 매운 타향살이의 고통을 견뎌야 했다.

전에는 가뭄도 심했다.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나가신 아버지는 가끔 논흙 칠을 하고 들어오셨다. 논에 물이 고이도록 물꼬를 보아 놓으면 몰래 물을 훔쳐 가는 경우가 있었다. 다시 물꼬를 고치시고 돌아오는 아버지는 몹시 기분이 상해 있었다. 더러는 그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옆 논 주인과 서로 멱살을 잡는 수모도 이겨내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의 자존심을 꾹 지키셨다. 온갖 고난이 밀려와도 굽힘이 없이 참아내며 자식의 성장에서 위안을 찾으셨다. 동네의 그 어느 집도 우리 형제들의 성적을 이겨보지 못했다. 흐뭇한 눈으로 상장을 바라보며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모범인 삶을 보여 주셨다. 아무리 고난이 밀려와도 굽히지 않는 삶의 태도를 손수 가르치신 아버지. 아무 것도 모르고 자라는 자식들의 방향키였고, 바람막이였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밭두둑에서 주위 풀들의 시기를 이겨내고 꿋꿋하게 자라 씨앗을 남기고 말라버린 옥수숫대를 바라본다. 동부 덩굴이 기어올라도 어깨를 내어주고 며느리밑씻개가 까칠한 손으로 타고 올라도 싫은 내색 없이 그 인고의 세월을 산 옥수수를 바라보면서 나는 아버지를 떠올린다. 성치 못한 몸으로 모든 역경을 이겨낸 아버지의 교훈을 만난다. 말라버린 옥수숫대에 걸쳐 있는 이파리를 보면서 아버지의 수의를 생각한다. 깡마른 몸에 둘러쳐졌던 아버지의 수의. 이생에서 난 상처를 모두 감싸주던 수의. 아버지는 그 수의 하나만 걸치고 떠나셨다. 자식들을 위해 모두 벗어놓고 가셨다. 싸한 바람이 분다. 이 바람이 코끝을 떠나면 나는 다시 옥수수 씨를 심을 것이다. 그리고 가뭄과 홍수를 이겨내며 여린 작물들의 바람막이 노릇을 하는 옥수수를 바라보면서 아버지를 추억할 것이다. 내 안에 없는 듯이 있는 아버지를 추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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