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녀 / 임경희
제10회 동서문학상 동상 산화된 세월을 건드리면 기억이 환원된다. 습기제거제를 넣으려고 옷장을 뒤적거렸다. 차곡차곡 놓인 옷들의 맨 아래 종이뭉치 하나가 보인다. 제법 도톰하고 길쭉하다. 겉포장을 벗겨 펼치니 수년이 지난 신문의 날짜가 눈에 들어온다. 내용물의 지난 세월을 말해 주고 있었다. 뽀얀 한지로 된 속포장지를 보고서야 외할머니의 유품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 유년의 기억을 고스란히 떠올릴 수 있는 할머니의 은비녀다. 오랜 세월에 은비녀의 색은 변했지만 할머니의 기억은 오히려 또렷하게 다가온다. 푸르스름한 여명의 시각, 할머니는 방바닥에 신문지를 펼쳐놓고 긴 머리를 풀어 동백기름을 발랐다. 가르마를 반듯하게 타서 한 올의 흐트러짐 없이 참빗으로 싹싹 빗어 내리고, 쫑쫑 땋아서 말아 올린 후 쪽을 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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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3. 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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